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실체 규명을 위해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인 고명진(41)씨와 안병용(54) 한나라당 은평갑 당협위원장 등 주요 피의자들이 일제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건 당시의 여러 정황이 돈 전달자로 두 사람을 지목하는 상황인 만큼 더 이상 자백 진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대신 수사의 성패가 증거수집에 있다고 보고 피의자들을 압박할 '히든 카드'를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메일 분석
고씨로부터 진술을 받아내는데 실패한 검찰은 차선책으로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현 국회의장) 캠프 인사의 이메일을 분석하고 있다. 이메일 교환을 자주 하는 국회 보좌진의 업무 특성 상 이메일 내용 중에 돈 봉투 관련 부분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메일 기록은 진술과 똑같은 의미로 볼 수 있어 피의자 자백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국회 사무처까지 압수수색 해 박 의장 캠프 인사들의 이메일 기록을 확보한 것도 이 같은 기대에서다.
검찰이 이메일 분석을 시도한 또 다른 이유는 돈 봉투에 관여한 인물들을 추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씨와 이메일을 주고 받은 사람들의 신상을 분석해 들어가면 돈 전달을 누가 지시했는지, 고승덕 의원 이외에 돈 봉투를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등이 간접적이나마 드러날 수 있다.
통화내역 분석
검찰은 박 의장 캠프에 대한 수사착수 사실이 알려진 직후 캠프 인사들이 수시로 전화통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사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말 맞추기도 시도했을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상하 관계가 뚜렷한 조직의 경우 윗선 지시에 따라 진술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은 고씨가 돈 전달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박 의장이나 당시 캠프 고위인사의 지시 때문이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박 의장 측은 "박 의장이 고씨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검찰은 통화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된 차명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고씨가 수사착수 이후 평소보다 많이 캠프 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말 맞추기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통화내역 분석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경우 이를 박 의장 측 인사를 압박할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계좌추적
검찰은 현역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 등에게 뿌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 출처를 파악하기 위해 박 의장 캠프 재정담당자 등에 대한 계좌추적도 병행하고 있다. 이에 비춰 전당대회 당시 박 의장 캠프에서 재정 및 조직을 담당했던 조정만(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의 계좌도 추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조 수석은 고씨에게 돈 전달을 직접 지시한 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이다.
검찰은 박 의장의 여의도 캠프 사무실 바로 옆 빌딩에 있는 하나은행 서여의도지점에서 2008년 전대를 전후해 뭉칫돈이 인출됐는지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에게 전달된 3개의 100만원 다발이 하나은행 띠지로 묶여 있었다는 고승덕 의원의 기자회견 발언에 착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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