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V리그의 포청천들이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방송기기가 날로 발전하고 고화질의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작은 실수 하나까지 카메라에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 제도까지 도입되면서 심판은 팬들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고령 심판인 김건태(60) 한국배구연맹(KOVO) 전임심판은 지난 8일 NH농협 2011~12 올스타전 이벤트 경기(선수들이 심판 변신)를 보면서 "마음 편하게 저런 경기의 주심을 해봤으면…"이라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V리그 포청천들의 고충을 들여다봤다.
130㎞ 고속 터치아웃, 착시현상 부르는 인ㆍ아웃
1985년에 입문한 김 주심은 심판 경력만 28년째다. 그래도 경기 때면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그는 "카메라가 15~20대가 동원될 때가 있다. 현미경 판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며 "시청자와 팬 그리고 관계자들은 더욱 정확한 판정을 원하기 때문에 심판들의 고충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주심에게 가장 어려운 판정은 터치아웃이다. 김 전임심판은 "시속 130㎞로 날아가는 장면을 포착해 손가락에 맞았는지 아닌지 판정을 내려야 한다. 손가락에 살짝 닿으면 식별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선심의 경우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인ㆍ아웃 판정이 가장 힘들다고. 그는 "보통 선심들이 공이 튀어 오를 때 순간을 보게 된다. 이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선심들이 바로 앞에서 보더라도 인ㆍ아웃을 판단하기가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5년 전부터 인ㆍ아웃 판정을 위한 전자감지 장치의 도입을 추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세터들 할리우드 액션 얄미워
터치아웃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포청천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베테랑 형사가 용의자의 눈을 보면서 노련하게 유도심문을 하듯 주심은 선수들의 표정과 액션을 통해 재빠른 결단을 내린다. 김 전임심판은 "놓친 부분은 육감적으로 정보를 입수해서 판정에 참고한다. 선수들의 리액션과 상대팀의 반응 등을 순간적으로 종합한다. 선수들의 눈을 보면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구별할 수 있다"며 매의 눈을 치켜 올렸다.
KOVO 심판들은 2007년 도입된 비디오 판독 제도 탓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팀당 1회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 있는데 2010~11 시즌 기준으로 리그 186경기에서 372회의 비디오 판독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시즌에 총 174회의 비디오 판독 요구가 있었다. 판정이 번복된 경우는 50%에 달했다. 그리고 경기당 2, 3번 밖에 없었던 4심 합의판정이 경기당 5, 6번으로 늘어났다. 김 전임심판은 "물론 오심을 줄일 수 있다면 비디오 판독과 합의판정을 자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심판들의 자신감 저하로 연결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토로했다.
가뜩이나 판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심판에게 선수들의 할리우드 액션은 얄밉기만 하다. 김 전임심판은 "여자부에서 할리우드 액션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세터들이 깐죽깐죽 대는 경우가 많아 꿀밤을 놓고 싶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주심은 할리우드 액션에 구두 경고를 준 뒤 옐로카드(상대팀에 1점 헌납)까지 줄 수 있다.
포청천의 세계도 1만시간 법칙
KOVO 소속의 심판은 총 38명. 이 중 10명의 베테랑만이 주심을 볼 수 있다. 김 전임심판은 "이론과 실기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필수다. 10년 정도 경기를 보면 1만 시간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후배들에게 '하루 24시간 배구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바둑처럼 경기를 복기하는 것도 필수"라며 "명판관이 되기 위해선 사생활 관리도 철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심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선수와 팬 모두가 틀렸다고 했을 때 오심이 된다. 미안하고 멋쩍은 순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심판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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