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올림픽대로 공항방면 서울 강동구 고덕동 강일 인터체인지. 머리와 손 등에 붕대를 감은 한 사람이 ‘사고다발지역, 제발 감속’이란 피켓을 든 채 1시간 가량 서 있었다. 운전자들은 진풍경을 보기 위해 속도를 줄였고, “맞는 얘기”라는 듯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교통사고 환자 분장으로 1인 퍼포먼스를 펼친 이는 서울 강동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류장하(39) 경위다. 지난달 19일부터 한 달 가까이 야간근무일과 비번일 낮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분장하고 혼자 서 있기 솔직히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고만 줄일 수 있다면 해야죠.”
그는 강동서에서 교통 및 방범순찰업무만 9년째 맡고 있다. 최근엔 고속도로 입구처럼 보이는 탓에 사고가 빈번한 고덕동 쓰레기집하장 진입로 폐쇄를 해당 기관에 요구해 시정을 받아냈다. 이런 지역 교통민원과 관련해 류 경위가 직접 처리한 것만도 10여 건이다. “한 지역에서 같은 업무 오래하다 보면 당연히 잘 알죠. 문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진입로 폐쇄를 위해 4개월간 휴일마다 인근 지역주민들을 만나 사고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는 여론을 모았지요.”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평소 견인차들이 강일 인터체인지 주변에 대기하는 것을 자주 본 그는 문득 그곳 사고발생 통계가 궁금했다. 2010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경찰에 접수된 사건사고를 조사해보니 생각보다 적은 10건 안팎이었다. 그러나 견인차업체 등을 통해 알아본 결과, 같은 기간 사고건수는 84건에 피해차량만 151대에 달했다. 경찰에 사고접수를 하지 않고 수습하는 경우가 많아 교통사고 다발지역임에도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곡선도로가 이어진 인터체인지 특성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난다고 판단한 그는 도로기울기를 측정하거나 평탄화 작업을 했다. 경찰 소관 업무였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에도 이를 알려 야광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과속방지 대책을 마련토록 했다. 그러나 과속방지 공사는 사고가 가장 많은 겨울철이 될 때까지 일부만 진행됐다. 류 경위가 직접 과속방지 피켓을 들고 현장에 뛰어든 이유다.
“해당 기관에 몇 차례 공문을 보내 공사를 서둘러 달라고도 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어요. 방법이 없잖아요. 제 몸이라도 과속방지시설이 돼야지.”
그는 강일인터체인지에 과속방지 시설이 생길 때까지 퍼포먼스를 계속 할 작정이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월 인사발령이 예정돼 있어 더 이상 이 업무를 맡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전에 빨리 처리됐으면 합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