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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맞댄 거울같은 그림 속 그림… 어? 그런데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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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맞댄 거울같은 그림 속 그림… 어? 그런데 뭔가 다르다

입력
2012.01.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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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조르주 페렉 지음·김호영 옮김/문학동네 발행·120쪽·1만원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르주 페렉(1936~1982ㆍ사진)의 작품 세계가 국내에 본격 소개된다. 문학동네는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을 시작으로 올해 안에 <인생사용법> <공간의 종류들> <겨울여행 어제 여행> <생각하기 분류하기> <나는 기억한다> <잠자는 남자> 등 모두 7권으로 묶인 선집을 낼 계획이다.

국립과학연구소의 신경생리학 자료 정리가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한 페렉은 독특한 실험문학그룹 울리포의 일원으로서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46세의 이른 나이에 기관지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프랑스 문학의 치열한 실험성을 보여주는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번역자인 김호영 한양대 교수는 "페렉은 플로베르 못지 않게 정확하고 냉정한 묘사를 보여주었고 누보로망 작가들만큼 급진적인 글쓰기 실험을 시도했으며 프루스트의 섬세하고 예리한 감성을 표현해냈다"고 평했다.

선집 첫 권으로 선보인 소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은 페렉이 1979년 발표한 마지막 소설로'반복과 차이'라는 현대 예술의 주요 주제를 '그림에 대한 그림'이란 흥미로운 소재로 풀어낸다. 부유한 미술애호가 헤르만 라프케는 화가 하인리히 퀴르츠에게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을 걸어놓은 방을 그리도록 주문해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란 그림이 탄생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그림 속의 방에 걸린 그림들 중에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도 걸려 있는 것. 서로를 무한히 반복해서 반영하는 맞거울을 보는 것처럼 그림 속에 같은 그림들이 되풀이 재현되는데, mm 단위의 미세한 붓터치만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림은 미술 전시회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로 관람객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끄는데, 묘하게도 그림 속 그림들이 복제 단계마다 조금씩 달라져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 예컨대, 첫번째 그림에선 강인한 모습의 권투 챔피언이 두번째 복제된 그림에선 어퍼컷을 맞는 모습으로 변하고, 세번째 그림에선 바닥에 쓰러진 모습으로 그려지는 식이다.

이 그림에 대한 미술평론가의 신랄한 해석은 소설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는 대목. 그는 '모사화와 모사화 사이의 미세한 차이야말로 예술가의 우울한 운명에 대한 최후의 표현'이라며 작품은 예술의 죽음을 나타내는 이미지라고 조소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창조가 고작해야 기존의 작품을 살짝 비트는 것뿐이란 현대 예술의 우울한 운명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예술만일까. 현대인의 정체성도 고작 타인과의 미세한 차이에서만 찾을 수 있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세계에 대한 우울한 암시도 담고 있다. 후반부에 이 그림에 얽힌 사기와 음모가 밝혀지며 반전이 이뤄지는데, 페렉은 창조가 아닌 참조와 차이뿐인 세계일지라도, 동일한 것을 다르게 살아내려 애쓰는 몸짓에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찾는다. 소설은 그러나 미술애호가의 방에 걸린 온갖 그림에 대한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고 세밀해 책 읽기를 방해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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