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칼'이 또다시 무뎌지는 걸까.
프로축구 출범 30년을 맞아 K리그는 변혁의 출발점에 섰다. K리그의 대대적인 개혁과 체질 개선을 위해 프로축구연맹은 승강제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승부조작 쓰나미'로 상처를 입은 K리그는 쇄신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시 다가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출발도 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연맹은 스플릿 시스템이 도입되는 올해 4개팀을 강등시킨다는 구상이었지만 시ㆍ도민 구단의 반발로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연맹은 지난 달 20일 이사회에서 '12+4' 제도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12개팀 1부리그 잔류, 4개팀 강등'의 안을 만들었지만 시ㆍ도민 구단이 거세게 반발하자 추후에 합의한다고 물러섰다. 연맹은 16일 오전 11시 승강제의 세부적인 시행과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이사회를 갖는다. 안기헌 연맹 사무총장은 "승강제를 준비하려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통과시켜야 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제대로 된 승강제 윤곽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ㆍ도민 구단들이 '2+2' 안을 연맹에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 강등팀을 올해 2개, 2013년 2개로 정해 2014년부터 본격적인 승강제를 시행하자는 안이다. 승강제 준비기간을 1년 더 늘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ㆍ도민 구단들은 "승강제를 시행하면서 1년 정도 경과 기간을 두는 게 시스템 정착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지극히 시ㆍ도민 구단들의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강등될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강등될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렇게 될 경우 승강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올해 상무를 포함해 단 1개 구단만이 강등될 경우 승강제의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또다시 향후 구단들의 입김에 휘둘릴 여지도 남게 두게 된다.
연맹과 각 구단들이 새로운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는 분위기라 더욱 문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어쨌든 승강제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강등을 당하는 구단의 파장을 생각했을 때 희생을 최소화해야한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강등되는 구단이 존폐 위기를 맞는다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작도 안 해보고 지레짐작으로 걱정한다면 기존의 틀을 깰 수 없다. 한 관계자는 "시ㆍ도민 구단은 수만 명의 주주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강등된다고 해서 없어질 팀들이 아니다"며 "승강제를 제대로 시행해야 축구 인프라가 확충될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결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칼을 뽑았으면 입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벨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회원사(구단)를 최대한 보듬어야 한다'는 연맹의 '엄마 역할'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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