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구글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실수로 유출되면서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코드네임 '플래티퍼스'(platypus)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모든 구글 이용자 정보를 저장하는 내용이다.
당시 에릭 슈미트 CEO가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저장장치 용량을 무한대로 늘려서 구글 이용자들의 이메일과 인터넷 검색 기록, 사진, 동영상 등 모든 정보를 저장한 뒤 PC나 휴대폰 등 다양한 기기로 접속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컨셉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클라우드 컴퓨팅'서비스인 셈. 하지만 당시 네티즌들은 구글이 동의 없이 이용자 정보를 무제한으로 수집해 '빅 브라더'가 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구글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구글은 이제 좀 더 합법적이고 진화된 형태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최대 전자전시회 'CES 2012'에서 에릭 슈미트(사진) 구글 이사회 의장은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세상'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9일(현지시간) '소비자 가전 다음의 이슈는'이란 강연에서 "향후 IT기술의 핵심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생태계"라며 "이 생태계는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작동되어야 하고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면 지원하는 것이 구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슈미트 의장이 말한 IT생태계의 연결고리는 구글의 운영체계(OS) 안드로이드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만 안드로이드가 탑재되어 있지만, 조만간 출시될 TV(구글TV) 그리고 앞으론 냉장고 세탁기 전등 자동차 가정보안장치까지 모든 기기에 안드로이드가 실리게 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스마트폰으로 TV 주방기기 자동차 문 열쇠까지 모두 작동 가능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람에 비유하면 OS는 두뇌이고 각 전자제품은 손발이다. 두뇌의 명령에 따라 손발이 움직이듯 앞으론 OS에 의해 모든 전자기기가 묶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원하는 건 바로 이런 OS, 그 중에서도 안드로이드에 의해 생활생태계가 형성되고 움직이는 세상이다.
실제로 구글은 오래 전부터 이런 컨셉의 '안드로이드@홈'전략을 추진해왔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전자기기가 작동하게 되고, 이용자 및 기기 사용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구글 포털로 모이게 되면 한마디로 '구글 천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미 이 같은 시도는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폰 점유율은 2009년 2.8% 였으나 2010년 17%, 지난해 48%로 급격히 늘어났다. PC가 중심일 때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OS가 지배했지만, IT중심이 모바일기기로 옮겨가면서 이제 OS의 중심축은 안드로이드가 차지하게 됐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퍼진 안드로이드는 이번 CES에서 TV분야로 영역을 넓혔고, 구글 발표대로라면 장차 자동차 조명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 IT전문가는 "안드로이드@홈 프로젝트는 거실의 불을 켜고 끄는 것부터 집안의 모든 기기를 안드로이드OS로 통제하는 것"이라며 "결국 구글의 OS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의 단일 표준화를 경계한다. 안드로이드는 지금 무료OS이지만 향후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국제표준이 되면 유료화할 수도 있다는 것. 공영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부연구위원은 "최근 구글의 전략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용자가 늘고 있는 구글 맵스, 구글 어스, 구글 검색응용도구 등을 잇따라 유료화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구글이 지난해 8월 인수한 모토로라를 스마트TV와 태블릿 부문에서 저가형 기기를 만들어 유통하는 쪽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 봤다.
구글은 어디까지나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IT기기로 짜여 진 세상에서 '통제불가능의 권력' '진짜 빅 브라더'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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