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면은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전문의에게 직접 듣는 코너를 새로 마련했습니다. 첫 순서로 소화기내과 전문의 민영일 비에비스나무병원장이 뱃속 이야기가 두 달 간 매주 한 차례 연재됩니다.
수면내시경을 자면서 하는 내시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수면내시경이란 말은 여러 해 전 필자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원래 정확한 명칭은 '의식이 있는 진정내시경'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마취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있으면서 진정시킨 상태에서 내시경을 한다는 뜻이다. 이를 환자들에게 일일이 이해시키기 어려워 수면내시경이라는 말을 쓴 게 이젠 보편화한 이름이 됐다.
환자를 진정상태로 만드는 건 수면유도제 주사다. 이 성분이 내시경 당시의 기억을 잃게 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면내시경 중 환자는 의료진이 묻는 말에 답하기도 하고, 옆으로 돌아누우라는 등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대부분 수면내시경 동안 환자들은 얌전하다. 신음소리를 내거나 구역질을 하는 정도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은 난동을 피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내시경을 스스로 뽑아내는 행동이다. 무작정 뽑다간 목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은 환자 손을 잡아 제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을 무릎으로 차거나, 주먹을 내두르거나, 꼬집거나 할퀴는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 중 일부는 내시경을 빼낸 후 일어나 앉아 의료진에게 훈계까지 한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나' '그렇게 살지 말아라' 등 갖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기억하진 못한다.
내시경 장비를 이로 물어버리는 환자도 있다. 순식간에 병원 예산 수백~수천 만원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내시경실 간호사는 드물긴 하지만 폭언을 듣기도 한다. 우리 병원 간호사는 "김양, 나랑 나중에 따로 한잔 하자"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아마 가수면 상태에서 환자가 병원이 아닌 술집에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하루 100건의 내시경을 한다면 내시경을 뽑아내려 해서 중단하는 경우는 1, 2건 정도다. 폭력이나 폭언은 훨씬 더 드물다. 약물 진정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이런 현상은 내시경에 대한 두려움이 크거나 평소 예민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거나 술을 잘 마시는 사람도 수면유도제 약효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환자들은 우선 잘 달래 진정시킨 다음 자게 한다. 깨어나면 이런저런 행동을 해서 내시경을 못했다고 설명하고, 다시 일반 내시경이나 코로 삽입해 고통이 덜한 경비내시경을 받도록 설득한다.
민영일 비에비스나무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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