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집중점검 학교폭력 대책] (3) 상담에서 위기관리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집중점검 학교폭력 대책] (3) 상담에서 위기관리로

입력
2012.01.11 17:33
0 0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이슈가 되면서 교내 상담교사는 그 해결에 가장 중요한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문상담사 1,800명을 학교에 증원배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장이 폭력사건 자체를 은폐할 우려가 있어 인권조사관을 파견해 조사한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상담교사의 수뿐만 아니라 역할과 권한이라는 점이다. 그저 아이들이 찾으면 상담을 한다는 식의 수동적인 역할에 그친다면 소용이 없다. 평상시엔 상담전문가, 위기발생시엔 갈등중재자로 나서는 미국의 위기관리코디네이터처럼 권한을 가진 전문가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늬만 상담교사

전문상담교사는 2005년 2월 1차 학교폭력 예방대책 5개년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일선 학교에 처음 배치됐다. 이후 전문상담교사가 얼마나 확충되었는지를 보면 우리의 학교폭력 대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 과시용인지 알 수 있다. 2007년, 2008년, 2010년 등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져 관련 대책이 나온 해에만 전문상담교사가 충원되고, 대책이 나오지 않은 해에는 한 명도 신규 채용하지 않았다. 7년이 흐른 현재 전국 초중고교 등 1만1,443개 기관에 있는 전문상담교사 인원은 883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의 업무는 학교폭력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진로진학 업무에 쫓기느라 학생상담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고, 학교폭력사건 해결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도 사실상 전무하다.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 성나경 전문상담교사는 "학교폭력은 학생부나 생활지도부에서 담당하고, 상담교사들은 주로 진로상담부나 교육복지부, 하다못해 방과후학교부에 배치돼 자기 학교에 폭력사건이 발생한 줄도 모를 정도"라고 토로했다.

각 학교마다 설치가 의무화된 학교폭력전담기구에는 상담교사, 보건교사, 책임교사(생활지도부 교사)가 함께 참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는 교육청 서류일 뿐 전담기구가 가동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교폭력 사건이 터지면 위기대책반 역할을 하는 것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인데 여기엔 상담교사 참여를 의무화하지 않아 회의 참관 자체도 불가능하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계약직 상담교사로 근무 중인 정선미 교사는 "뒤늦게 사건을 알고 가해ㆍ피해 학부모들한테 상담치료를 위해 연락했다가 왜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하느냐는 교장의 면박만 들었다. 자치위가 열려도 아이들 평소 상담자료만 건네주는 등 사건 해결에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고 씁쓸해했다. 정 교사는 "지금처럼 상담교사의 손발을 다 묶어놓은 상황에선 숫자를 100만명 늘려도 학교폭력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위기관리 역할 부여해야

이러한 구멍을 막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위기관리전문가에 해당하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위기관리코디네이터와 같은 전문인력을 두고 ▦단위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 소속으로 독립성 유지 ▦피해ㆍ가해 학부모 소환권 및 면담권 보장 ▦일반 교사의 상담교육 관할 및 협조요구 권한 부여 ▦임용시 학교폭력 교육 의무화 등을 보장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의 위기관리코디네이터는 평상시엔 학생들 상담에 주력하고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땐 교육장(교육지원청의 장)에게 즉시 보고하며, 교내 외 자원을 총동원해 사태해결을 주도한다. 학교장에게 예속돼 있지 않아 학교의 문제해결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을 은폐하거나 흐지부지 넘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독립적인 위상이 확보되면 피해ㆍ가해 학부모들 간 분쟁의 갈등조정자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오지연 참교육실 사무국장은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학부모들은 아이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버티고, 피해학부모들은 지금까지 학교는 뭘 했냐며 책임소재를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만, 제 3자인 상담교사가 중심을 잡으면 중재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부모 소환권 및 면담권을 보장해야 한다. 일반 교사들의 학교폭력 교육도 상담교사가 맡아야 한다.

위기관리 전문가는 상담치료나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학교폭력 관련 지식을 갖춘 인물이 적격이다.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SOS지원상담팀장은 "심리치료 등 상담기법뿐 아니라 법률,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분쟁조정 노하우가 뒷받침될 때 학교폭력 전문가로서 신뢰할 수 있다"며 "상담교사들에게 특화된 전문 연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구훈 학교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학교는 오로지 교사 중심으로만 구성돼 폐쇄적인 게 문제다. 교사는 엄밀히 말해 가르치는 전문가지, 학교폭력 전문가는 아니다"며 "선진국처럼 위기관리전문가를 학교에 배치해 예방 및 사후대처, 장기적으로 사회복지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