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포한 해다. 하지만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함으로써 김일성 출생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는 차질을 빚게 됐다. 지금 북한은 강성대국은커녕 김정은 정권 유지가 급선무다.
위로부터 후계를 정비해온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은 김정일의 생존기간과 비례할 것이란 추론이 많았다.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예상보다 빨리 사망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불확실은 높아졌다. 올해 최대의 관심사 중의 하나는 김정은 정권의 안착여부다.
이제 막'초보운전'을 시작한 20대 후반의 김정은 정권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생존의 '중심고리'를 찾아야 한다. 중심고리란 말을 우리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자주 쓰는 말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사물의 현상이나 일의 진행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리"가 중심고리다.
중심고리를 풀면 다른 고리들은 쉽게 풀린다고 하면서 북한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 중심고리전략을 펴왔다. 이를테면 북한경제건설에서는 중공업이 중심고리다. 북한은 중공업을 발전시키면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중공업 우선정책을 펴왔다. 대남정책에서는 미군철수가 중심고리다. 냉전시대 북한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남조선을 해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의 최대목표는 정권과 체제를 수호하는 생존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지도부는 생존의 중심고리를 북-미 관계에서 찾으려 했다. 김정일 정권은 유일패권국가로 부상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생존의 중심고리라고 생각했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개혁ㆍ개방 등 정책전환의 전제조건으로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꼽았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핵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경제위기 극복에는 실패했다.
김정은 정권의 최대목표 역시 정권과 체제유지이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북-미 관계에'올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정권은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장기과제로 돌리고,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경쟁관계를 활용해서 생존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의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정권이 집권 초기에 핵포기와 안전보장을 맞교환하는'근본문제' 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핵포기보다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과 식량의 맞교환 등 과거 북-미 제네바 합의의'동결 대 보상' 방식을 '중단 대 보상' 방식으로 바꾸어 협상을 진행하되 핵포기와 평화협정의 맞교환 같은 근본문제 협상은 장기 과제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 3차 북-미 회담을 위한 준비 접촉에서 비핵화 선행조치와 식량지원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뤄진 점,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가 김정일의 유훈 이란 점, 미국이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김정일 사후 북-미 협상의 부분적 진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의 폐기 등 근본문제 해결을 서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가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핵보유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대신 중국으로부터 안전담보를 약속 받고, 북-중 경협 확대를 통해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취약한 김정은 정권의 권력을 공고히 하도록 도와주고, 북한에 중국식 개혁방을 촉구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시대 진정한 생존의 중심고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빨리 아버지의 나쁜 유산을 극복하고 정책전환을 시도하는 것에서 생존의 중심고리를 찾아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최근 북한이 자주 언급하는 구호인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에서 생존의 중심고리를 찾아야 한다. 내부자원이 고갈된 북한에서 자력갱생방식으론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