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작년만큼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해는 없었던 것 같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에도 원자력 문제는 전세계의 관심사가 됐지만 아무래도 이웃한 일본에서 난 사고인데다 미디어의 발달로 거의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경과가 보도되면서 일본의 방사능 누출사고는 우리 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됐다. 이 영향으로 일각에서는 모든 원전의 폐쇄와 신재생에너지로의 완전한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 국민이 에너지 절약 운동에 동참한다면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면서 원자력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여의도로 이사 온 후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올해 서울 근교에 자그마한 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평생 갚아 나가야할 은행부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의 꿈이던 마당 있는 주택의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지만, 이사를 오자마자 만난 첫 번째 복병은 전기, 가스요금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반팔을 입고 다닐 만큼 집안 온도를 높여 왔지만, 단독주택에서는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거의 폭탄에 가까운 난방비용을 물게 된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다 보니 '실내온도 20도 이하! 집안 전등은 LED로!'라는 식으로 절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에너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불편한 점도 상당히 많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간 아무생각 없이 에너지를 과소비 해온 것이라 하겠다.
해마다 겨울과 여름이면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게다가 지난해 9월 15일 발생한 정전사태는 '블랙아웃(대정전)' 직전까지 갔었다. 이렇게 매년 반복되는 전력대란의 걱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득이 원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원전부지나 방폐장 부지를 결정할 때마다 엄청난 진통을 겪는다.
물론 전력부족으로 인한 불편, 공공요금의 인상에 대한 불만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실 1896년 베크렐에 의해 발견된 동위원소에 의한 방사선은 수많은 오해를 거쳐 오늘날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는데, 방사능의 신비한 힘을 얻고자 맥주에 라듐을 넣어서 마시기도 하고, 머리가 좋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베개에 동위원소를 넣고 잠을 자기도 했다. 방사능은 이러한 수많은 우여곡절을 통해 고형암의 치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된 치료 수단이 되었으며 방사선 치료를 통해 많은 암환자들이 새 생명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이 없는것은 아니다. 매우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지만 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의 개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 특히 여러 사람이 관련된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장단점이 있는 여러 방안 중 우리에게 보다 좋은 방법을 취사선택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원전에 의한 방사능 우려가 결코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발전방법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현실을 볼 때 무조건적인 원전 반대만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말 새로운 원전건설 후보지가 발표됐다. 원전에 대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당면한 과제는 원전 폐쇄가 아닌 더욱 안전한 원전을 건설하고 운용하는 데 지혜를 모으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폐해가 적고 효율적인 대체 에너지 개발에 장기적인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박석원 중앙대 의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