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전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원이 담긴 돈봉투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검은 뿔테 안경 남성'의 신원이 압축되면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돈 살포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소환도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상호 부장검사)은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봉투를 전달받은 고 의원실 여비서 이모씨를 지난 9일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달자를 사실상 특정하고 소재 파악 및 신병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에게 박 의장 측 인사 5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돈 전달자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의원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전당대회 하루이틀 전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30대 초중반의 남성이 찾아와 의원실 여직원에게 노란색 봉투를 건넸고, 그 봉투 속에는 현금 300만원과 당시 전당대회에 출마한 박희태 국회의장의 이름이 적힌 작은 명함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그간 고 의원의 진술에 의존했던 검찰 수사는 돈 전달자 파악을 통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돈 전달자를 상대로 이를 지시한 윗선과 자금 출처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받아낼 경우 정치권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돈 전달자가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의 명단이나 증빙자료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은 돈봉투를 박 의장 측에 돌려준 고 의원 보좌관 출신 김모씨와 돈봉투를 전달받은 여비서 이모씨를 조사함으로써 고 의원 측 인사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마쳤다. 향후 수사는 돈을 전달한 박 의장 측 인사에 대한 조사에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은 일단 고 의원이 돈봉투를 돌려준 직후 고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박 의장 측 인사를 불러 전화를 하게 된 경위와 대화내용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특히 고 의원이 당시 전달받은 돈봉투가 H은행의 종이끈으로 묶여 있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여의도 일대 이 은행 지점들을 중심으로 박희태 당시 후보 캠프의 운영비 계좌 및 주변인사들의 계좌 추적에 본격 착수할 방침을 세웠다.
검찰은 돈봉투의 출처가 박 의장 측으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 박 의장에 대한 직접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했다. 검찰은 박 의장을 상대로 돈봉투 전달 사실을 알았는지, 알았다면 어느 정도나 개입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해외순방 중인 박 의장은 18일 귀국할 예정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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