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쇼의 막이 올랐다.
세계 4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2012 북미 국제오토쇼(일명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9일(현지시간) 미디어 행사를 시작으로 14일 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한 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내다볼 수 있는 이 행사는 글로벌 메이커들 간 기선 제압 싸움이 볼만한 무대. 하지만 올해 특히 흥미를 돋우는 대목은 이런 거포들의 경연장에 거침 없이 도전장을 내민 '앙팡 테리블(무서운 신예)'과 한 시대를 풍미한 뒤 소비자의 기억에서 다소 흐려졌지만 여전히 '노병은 죽지 않았다'며 돌아온 베테랑들의 활약이다.
물론 이들 역시 '친환경 차', '작은 차'라는 최근 자동차 업계의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나름의 독특한 개성으로 시선을 모았다. 40여 개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모델과 미래에 생산될 컨셉트 카들이 뽐내는 이번 모터쇼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74만 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려한 변신으로 옛 영광을 다시 노린다
닛산은 패스파인더(Pathfinder)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강자 자리를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1995년 미국 시장에 등장, 1년에 7만대 넘게 팔리며, GMC 등 토종 SUV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패스파인더. 그러나 2000년 대 들어 판매량은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지난해에도 약 2만6,000대 판매에 그쳤다.
닛산은 패스파인더의 부활을 위해 '작고 가벼운 SUV'로 변신을 꾀했다. 특히 지금까지 팔린 모델은 트럭을 만들 때 쓰는 풀 사이즈 크기의 프레임(뼈대)을 썼지만, 새 모델은 알티마, 맥시마 등 닛산의 대형 승용차를 만들 때 쓰는 플랫폼으로 바꾼 점이 가장 큰 변화이다. 이를 통해 기존 모델보다 무게는 약 227㎏ 줄이고, 연비는 25% 향상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략은 포드의 '뉴 익스플로러'가 시도했던 전략으로, 이 같은 변신 후 지난해 12만5,000대 넘게 팔렸다.
닛산의 SUV와 트럭의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켄 콤트 디렉터는 "SUV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고 있다"며 "단순히 4륜 구동의 성능만 좋아하던 데서 벗어나 더 넓고, 편안하고, 세련되면서 환경 친화적인 차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파인더는 올해 말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크라이슬러는 1976년 생산이 끝난 닷지 다트(Dart)를 부활시켰다. 다트는 1960년 등장 이후 부담 없는 가격과 지느러미를 떠올리게 하는 꼬리 부분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17년 동안 330만 대 넘게 팔리며 미국의 대표적 대중차 브랜드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다트는 1990년 대 중반 이후 '작은 차(컴팩트 카)'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크라이슬러의 명성 회복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컴팩트 카 부문은 미국 자동차 시장 전체 점유율 15%를 차지하고 있고, 갈수록 그 점유율은 높아지고 있다. 북미 올해의 차로 뽑힌 현대 엘란트라(아반떼), 판매량 1위의 도요타 코롤라, 혼다 시빅, 쉐보레 크루즈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다트는 대형차 위주의 크라이슬러와 2009년 이 회사를 인수한 소형차의 대명사 이탈리아 피아트-시트로앵의 첫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끌고 있다. 피아트 산하 알파로메오의 해치백 '줄리에타'의 플랫폼(차 틀)을 쓰는 등 기술과 디자인 등에서 이탈리아 새 주인의 스타일을 많이 가져왔다.
"이제는 내 세상이다"신인들의 도전장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인은 GM캐딜락의 스포츠세단 'ATS'. 지난해 미국에서만 9만3,000대 이상이 팔린 동급 최강 BMW 3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의 C시리즈 등 독일 브랜드들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공을 들인 작품.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한 모델인 만큼 화려한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는다. 가죽, 나무, 메탈 장식 등 고급 소재를 아낌 없이 썼고, 다양한 색상의 가죽과 장식을 고를 수 있다. 8인치 터치스크린 등을 쓸 수 있는 CUE 인포메이션 시스템과 BOSE 오디오 시스템, 디지털 계기판 등이 '급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진 앞부분이나 꼬리 부분 등은 전체적으로 기존 캐딜락 세단의 겉모습을 많이 닮았지만 앞 부분을 좀 더 날카로우면서도 둥글게 만들어 '귀여움'까지 느끼게 해주고 있다. 휠은 17인치를 기본으로 썼는데, 빠른 속도를 낼 때 입구를 조금 닫아 공기 저항을 덜 받게 만든 가변식 그릴이 특이하다. 플랫폼은 새로운 후륜구동 방식에 맞춰 새로 만들어졌고, 2ℓ급 4기통 직분사 터보 엔진을 달았다. 올해 하반기 미국 운전자들을 만난다.
현대차는 '벨로스터 터보'를 세계 최초로 공개, 실용성에 운전의 재미까지 더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폴크스바겐 골프 GTI, 혼다 시빅SI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대차는 이 신인에게 세계 자동차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엔진 다운사이징(크기는 줄이되 힘과 연비는 더 향상시키는 것)의 흐름에 맞춰 지난해 10월 '국제 파워트레인 컨퍼런스'에서 처음 공개했던 감마 1.6터보 GDI엔진을 처음 적용한 영광을 안겼다. 이 차는 2ℓ 엔진의 힘(최고출력 204 마력)을 내면서도 연비는 더 좋아졌다.
기존 강자들의 선택은 하이브리드
반면 기존 강자들은 친환경 대세를 반영하듯 하이브리드 모델을 많이 내놓았다. BMW는 3시리즈의 하이브리드 버전 '액티브 하이브리드3'를 선보였다. 지난해 12월 도쿄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던 5시리즈 기반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액티브 하이브리드'와 같은 시스템을 달았다. 335i에 달린 3.0ℓ 직렬 6기통 직분사 가솔린 터보 엔진을 달았고,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35i에 비해 12.5% 개선됐다. 최대 4㎞를 전기모터로만 움직일 수 있는 EV모드도 적용했다.
벤츠는 주력 세단 E클래스에 처음으로 하이브리드를 적용한 'E400 하이브리드'를 최초로 공개했다. S400 하이브리드와 같은 V6 3.5ℓ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했다. 또 디젤인 E300 블루텍 하이브리드는 4기통 2.1ℓ 터보 전기 모터를 달았다.
도요타는 첨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V) 시스템을 단 컨셉트카 'NS4'를 발표했고, 혼다는 바퀴에 직접 모터를 연결하는 '인-휠 모터'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슈퍼 스포츠카 '어큐라 NSX'의 컨셉트카를 공개했다. 볼보는 XC6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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