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냄비에 둥글게 퍼진 파스타면 혹은 꽃망울을 터뜨린 꽃잎처럼 방사형으로 뻗은 길고 짧은 막대의 형상이 눈길을 끈다. 가까이 다가가면 막대는 각각의 기다란 나팔로, 이 안에선 일정한 간격으로 기계음이 들린다. 괴생물체 같은 이것은 미디어 아티스트 김병호씨의 사운드 조각이다. 시각은 물론 청각까지 압도하는 사운드 조각은 손맛이 깃든 조각보다 오히려 복잡한 공학에 가까워 보인다. 인세인 박씨는 바닥에 촘촘히 깔아둔 케이블 선을 깎아 이미지를 새긴다. 수신이 불안정한 TV화면처럼 가로선으로 가득해 작품 속 인물이 범죄자처럼 보이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의 과도한 미디어 조작을 비판한다.
12일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아티스트 위드 아라리오'는 새로운 매체의 사용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경험과 사유를 응축한 아시아 작가들의 전시다. 두 명의 한국작가를 비롯해 레슬리 드 차베즈(필리핀), 위엔위엔(중국), 투크랄 앤 타그라(인도) 등 11명이 조각 설치 페인팅 등 30여점을 출품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아라리오 갤러리 청담점 개관을 기념해 아라리오 소속 작가 40여명의 작품 세계를 포괄적으로 조명한 전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1,2부에서는 인도 현대미술의 선구자인 수보드 굽타를 비롯해 인도의 신진작가들과 권오상, 강형구를 비롯한 한국 현대 미술 스타작가들의 신작을 한 자리에 선보였다.
필리핀의 레슬리 드 차베즈는 자국의 식민 역사와 종교를 소재로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젊은 중국 작가 리칭은 하나의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고 데칼코마니 방식으로 다른 캔버스에 같은 그림을 찍어낸 후 그것을 사진 촬영해 새로운 회화를 실험한다. 닮은 듯 다른 아시아 작가들의 다양하고 신선한 시선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전시다. 2월 26일까지. (02)541-5701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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