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는 싸는 물건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또 쌀 것이 있을 때에는 존재하다가도 쌀 것이 없으면 하나의 평면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린다. 보자기는 가방과 달리 사용하는 인간과 도구가 일체화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보자기를 하찮은 싸개가 아닌 동양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재해석했다.
이씨가 보자기의 기능적 측면에서 동양의 독특한 문화를 통찰했다면, 자수명장 김현희(66)씨는 약 반세기 동안 보자기를 실용적 물건에서 예술작품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미를 해외에 알리는데 기여해왔다.
0.5mm의 촘촘한 땀을 뜨는 김씨의 타고난 솜씨와 감각적인 색채조합에,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은 '신이 내린 솜씨'라며 감탄하곤 한다. 조선 궁중자수의 맥을 이은 김씨는 1994년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97년에는 문화재청에서 자수명장으로 인정받았다. 김씨의 개인전 '복을 수놓다'전이 6일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4년 만에 여는 국내 전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보자기와 자수 작품 40여점이 출품됐다.
김씨는 기본적으로 조선 궁중자수 도안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전통 도안이 부분적으로 뭉개지거나 선이 옅어지는 경우가 많아 형태를 보완하고 자신의 개성을 담아 색채를 재건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같은 도안으로 만들었다는 네 가지 버전의 '수목문수보'를 보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빚어낸 김씨의 탁월한 감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는 수를 놓은 수보와 퀼트처럼 조각천을 이어 붙인 조각보 등 보자기 작업도 다양하게 펼쳐왔다. 국무총리상 수상작도 수보와 조각보를 결합한 '화문수 조각보'였다.
"수보에 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수보의 문양이 해학적이고 아름다워서 옷과 그릇에 디자인해도 손색없을 정도죠. 수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서 이번 전시에도 여러 작품을 내놓았어요." 9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전시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명주실을 직접 꼬아 적당한 굵기의 실을 만들고 천과 함께 천연 염색해 원하는 색감을 만들어낸다. 붉은색은 선인장 벌레로, 보라색은 철로, 옅은 노란색은 양파껍질로 색을 낸다. "청, 적, 황, 백, 흑의 한국의 오방색은 물론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라지 않는 색을 사용해요. 전통 자수에도 옅은 색에서 진한 색으로 물드는 그러데이션이 있지만 전 한층 극대화했어요."
그의 작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졌다. 1999년 일본에서 출간한 보자기 작품집이 1만권 이상 판매되었고 일본 교과서 표지에 실리는가 하면 일본 황실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미국 시애틀 박물관, 하버드대학교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민속박물관 등에도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금까지 1,000여명의 제자를 길러 낸 김씨는 자신의 작품은 거의 판매하고 있지 않다. 올 6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9일까지. (02)726-4428~9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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