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1일. 민자당 서울 강북지역의 원외 지구당위원장 K씨는 대권주자이자 민정계 수장인 거물 중진의 집을 찾았다. 세배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사람들로 거실이 북적거려 K씨는 내실로 들어가 세배를 했다. 덕담을 나눈 후 그 중진은 "원외라서 힘들지"라며 세뱃돈이 든 봉투를 하나 건넸다. K씨는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만져보니 봉투 안에는 한 장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속으로는 한 장이 얼마일까 궁금했다. 100만원이면 서운하고, 1,000만원 정도 예상했다. 서둘러 집을 나와 차에 타서 봉투를 열어본 순간 K씨는 "억"하고 놀랐다. 봉투에는 1억원 수표가 들어 있었다.
이 만화 같은 뒷얘기는 K씨가 몇 년 후 문민정부 시절 개인적으로 털어놓은 내용이다. 당시 중진이 거금을 준 이유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인 데다 대선 후보를 놓고 김영삼 대표와 한 판 승부를 벌이기에 앞서 의원들이나 지구당위원장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의원들이 K씨처럼 거금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승부처에서는 계보 보스로부터 수천만원을 받는 것이 상례였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국회의장(당시 원외)의 명함과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 사건은 92년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가 20여 년 동안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이 깨끗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300만원 돈봉투 살포가 정당화될 수도 없고 덮어질 수도 없다. 고 의원의 폭로가 지역구 경쟁자를 미는 박 의장에 반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고, 300만원이 포섭용은 아니고 거마비로 관행이었다는 변론도 있지만, 어찌됐든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를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제 당내 선거에서 돈봉투를 돌리거나 요구하는 간 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배반의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배반의 정치가 선거풍토 개선에 기여한 사례는 많다. 2004년 3월 선거사범을 신고하면 최고 5,000만원의 포상금을 받고, 금품을 받으면 50배를 물게 하는 공직선거법이 통과된 이후 뒤탈을 걱정해 돈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의원으로부터 배반의 정치에 대한 생생한 고백을 들었다. "당선 직후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선거를 돕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 전화인 줄 알고 받았더니 그는 '정치판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의원님으로부터 받은 돈이 양심에 걸려 기자회견을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했다. 아득했다. 지인을 보내 설득, 해결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며칠 후 그 지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며 찾아와 '떠나기 전에 언론에 고백을 해야겠다'고 하더라. 속이 끓었지만 조용히 마무리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선거법에 규정된 비용 외에는 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곳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엄격해진 선거법 덕분에 돈 쓰는 선거풍토는 많이 사라졌고 금품 관련 선거사범도 대부분 식사를 제공하다 걸린 것이지, 현금을 주고받은 경우는 별로 없게 됐다.
고 의원의 폭로도 선배 정치인을 곤경에 빠뜨린 전형적인 배반의 정치다. 당시 공개했으면 훨씬 떳떳했을 것이다. 정권 말기가 되고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이해가 엇갈리는 시점에 폭로한 것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정치인에게는 사적 의리보다 공적 도리가 훨씬 중시해야 할 가치라는 점에서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전당대회나 비례대표 공천 등 정당 내부의 일은 법 규정조차 미비해 음습한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차제에 정당법도 손질해 당내 선거도 돈 들지 않고 공영화를 할 수 있는지 검토해 정치의 안팎이 확실하게 깨끗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