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은 사뭇 달랐지만 '킹'의 골 감각은 변함없었다.
1999~2007년 아스널의 공격을 이끌며 구단 최다득점(226골) 기록을 세웠던 티에리 앙리(35)는 날렵하고 깔끔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2개월 단기 임대로 5년 만에 돌아온 앙리는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살이 다소 붙었고, 수염을 길러 '털보' 이미지로 아스널 홈팬들에게 인사했다. 복귀전에서 동화 같은 결승골을 넣은 뒤 아르센 벵거 감독을 격렬하게 끌어안고 호랑이처럼 포효한 앙리는 달라진 모습으로 '왕의 귀환'을 알렸다.
앙리는 10일(한국시간) 영국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64강 리즈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후반 33분 결승골을 터트리며 1-0 승리를 주도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는 제르비뉴(코트디부아르)와 마루아네 샤마크(모로코)의 공백을 메울 '구원투수'로 지목된 앙리는 첫 경기부터 벵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맹활약을 기대케 했다.
앙리는 후반 23분 샤마크를 대신해 투입됐다. 우세한 경기를 이어나갔던 아스널은 승리를 결정지을 한방이 필요했다. 앙리는 후반 33분 자신의 주특기 장면을 연출했다. 페널티지역 내 왼쪽으로 침투한 앙리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알렉스 송의 패스를 받았다. 한번의 볼 터치 후 앙리는 전매특허인 오른발로 감아 차는 슈팅으로 골문을 갈랐다. 변함없이 '원샷원킬' 능력을 발휘한 앙리의 골을 잘 지킨 아스널은 FA컵 32강에 진출했다.
미국 뉴욕 레드불스에서 아스널로 2개월 동안 임대된 앙리의 눈부신 활약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박주영에게는 악재다. 지난 11월 이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박주영은 앙리에 밀려 이날도 벤치만 달궜다.
벵거 감독과 팬들은 앙리의 녹슬지 않은 기량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앙리는 2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빅매치에 이어 2월16일 AC밀란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월26일 토트넘과의 북런던 더비에서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벵거 감독은 "로빈 판 페르시와 투톱을 세울 수도 있다"며 앙리를 중용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앙리는 "얼마 전까지 멕시코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아스널에서 뛰고 골까지 넣어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한 명의 팬으로 아스널에 합류했고 팀을 돕고 싶다"고 소박한 소감을 밝혔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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