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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인호, 천주교 서울주보 암투병기 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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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인호, 천주교 서울주보 암투병기 진한 감동

입력
2012.01.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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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두려움을 내려 놓으세요." 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가벼운 위로조차 되기 힘든 말이겠지만, 그 자신 절망의 나락을 경험한 사람이 전하는 말에선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소설가 최인호(67)씨가 4년째 암 투병을 하며 겪은 절망과 고통, 그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은 글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 에 실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최씨는 2008년 5월 침샘암 판정을 받고 수술한 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1987년 귀의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씨는 <서울주보> 1월 1일자 '말씀의 이삭' 코너에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를 시작으로 매주 글을 싣고 있다.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8일자), '벼랑 끝으로 오라'(15일자) 등을 포함해 다음달 말까지 모두 9편의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그는 1993, 95년에도 같은 코너에 글을 썼다.

그는 1일자 첫 글에서 "2008년 여름, 암 발병 선고를 받고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절망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식을 치렀다"며 태풍처럼 불어 닥친 암 선고의 충격과 함께 죄의식에 휩싸였던 경험부터 전했다.

"이 태풍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러분 중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1장 30절)'이라는 말씀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암의 선고는 미국작가 나다니엘 호손이 쓴 간통한 죄로 'A'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여주인공의 낙인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죄의식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머리를 깎은 천사와 같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면서 절망감마저 느꼈다. 그 어린 환자의 병을 누구의 죄로 돌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때 그는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복음 9장 3절)라는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며 죄의식에서 해방되고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라며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8일자 글에서는 항암치료에 따른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2009년 1월 암이 재발해 항암요법을 시작한 후 밥은 물론 물도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고통으로 인해 "때려죽여도 다시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5장 16절)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모순의 진리였고 고통으로 기도의 말조차 떠올릴 수 없었으며, 기쁨은커녕 감사의 마음도 느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가 '지금은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겨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마태오복음 26장 38절)는 예수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그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주님도 고통을 호소하였는데, 제 고통과 두려움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요"라며 위안했다.

15일자 기고에선 투병하면서 겪은 두려움을 전했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끊임없는 걱정과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루 24시간 매 순간이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몇 날 며칠 불안을 고민해보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안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됐던 불교경전 <금강경> 의 사구게(四句偈)와 중국 당나라 선승 황벽(黃檗)의 말, 신약성서 마태오복음의 구절을 차례로 소개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금강경> 중에서)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황벽)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오복음 6장 34절)

최씨는 "과거를 걱정하거나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는 '신앙간증'으로 글을 맺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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