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상보육 우선순위 선결이 '정책 헛돌기' 막기 위한 첫걸음
정치권에선 보육공약을 두고 '최소 2표, 최대 6표가 걸린 사안'는 농반진반의 말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육아는 좁게는 부모, 넓게는 양 조부모가 얽혀있는 문제라서다. 게다가 보육정책의 직접 수혜층은 각종 선거 판세를 가르는 30~40대 부모들이다. 지난 해 민주통합당이 '무상보육'을 집중적으로 들고 나오고, 주춤하던 한나라당이 올해 예산안에 '0~2세 영ㆍ유아 보육료 전면 지원'을 도입할 만큼 적극적이 된 배경에는 이런 정치적 판단이 있다. '아이 키우기 편한 세상'이 올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 공약 중에서도 최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럽 복지국가에 비해 보육정책이 뒤떨어진 우리나라에선 도입해야 할 제도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재원은 한정돼있다. 결국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정치권의 머리싸움은 시작됐다.
보육료지원 확대 vs 양육수당 도입
올해부터 우리나라도 무상보육 시대의 문이 열리긴 열렸다. 문제는 그 다음 과제다. '0~5세 무상보육' 가운데 0~2세와 5세에 대해선 보육료 전면지원과 누리과정이 도입됐으니 후속 정책으로 '3~4세 보육료 지원'이 우선이냐, '시설에 다니지 않는 영ㆍ유아에 대한 양육수당 지급'이 먼저냐를 놓고 논쟁이 만만찮다.
보육정책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조용남 한국보육진흥원 보육진흥기획단장은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만 지원을 해주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양육수당을 다음 정권 내에 도입해 가정양육도 지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육수당은 가정양육을 부추겨 여성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권 국장은 "시설보육과 가정양육 둘 다 지원해 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 허울이고 실제로는 공보육보다 가정양육을 부추기고 그 부담을 여성에게만 전가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도 고심 중이지만 민주통합당은 더 보편적인 아동수당으로 선수를 치면서 아동수당 도입 논쟁에 불을 붙일 기세다. 아동수당은 시설이용과 상관 없이 일정 연령까지 지원하는 것이어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 정치권에서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하던 사안이다.
민주통합당 보편적복지특별위원회는 차기 정권이 시작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현재 보육료 지원에서 제외된 3~4세 영ㆍ유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이와 동시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월 10만원씩 0~5세 아동에 대해 단계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보편적복지특위 위원장인 김용익 서울대 교수는 "양육수당에 역효과가 있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양육수당 확대 방침을 접고 아동수당 도입을 대안으로 마련했다"며 "보육료 지원 확대와 함께 '투트랙'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원마련이 가능하느냐다. 그 돈이면 다른 취약층 지원을 먼저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수당은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정책"이라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아동수당 도입보다 기초노령연금 현실화 등 빈곤노인에 대한 지원책이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쇄신논란에 '돈봉투 폭탄'까지 정치문제가 겹쳐 정책 논의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의 복지전문 의원들 사이에선 양육수당 도입보다는 3~4세 보육료 지원의 구멍을 메우는 게 먼저라는 분위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손숙미 의원은 "양육수당은 현금으로 지원되는데 실제 가정보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고 다른 용도로 쓰이는 등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손 의원은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보육료 지원과 더불어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한 '남성의무육아휴직제' 등 부수적인 정책이 같이 추진돼 가정의 보육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로만 '무상보육'은 포퓰리즘
'무상보육'이라는 간판을 놓고도 말이 많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보육료 지원은 표준보육비용 지원을 일컫는다. 어린이집 등에 내는 실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민간 보육시설에서는 표준보육비 외에 영어ㆍ체육 등 특별활동비에 교재비 등이 있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표준보육비 지원만으론 무상보육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간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육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알짜 정책'을 펴기를 주문한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실장은 "민간 보육시설이 보육료의 상한을 지키도록 규제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육 인프라를 갖추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조건 돈을 많이 투입한다고 보육의 공공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며 "현재 5.3% 수준인 국ㆍ공립 보육시설을 확대하고 민간 보육시설의 수준을 엄격히 관리하는 등 실질적인 보육기반부터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 한나라당은 ▦남성의무육아휴직 할당제 도입 ▦육아휴직 활용률 높은 기업에 인센티브 부여 ▦민간병원 필수 예방접종 전액 무료 추진, 민주통합당은 ▦아이돌보미 사업 확대 ▦국ㆍ공립 보육시설 30% 수준으로 확대 ▦육아휴직기간 연장 등을 당 정책으로 검토 중이다.
◆보육료ㆍ양육수당ㆍ아동수당
보육료는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ㆍ아동에게 지원하는 시설이용비이다. 신청 가정이 신용카드로 발급받아 어린이집(유치원 포함)에서 결제하도록 돼 있어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 양육수당은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0~5세 아이를 둔 가정에 현금으로 지급된다. 아동수당은 시설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아동수당은 만 18세까지 지급된다. 이 외에 가족수당은 꼭 자녀가 아니더라도 부양가족 수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아동수당보다 범위가 넓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 '반쪽 무상보육'
선별적 복지를 우선하는 현 정부도 저출산문제 해결 등을 위해 보육에 있어서 만큼은 소득과 상관없이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만 0~2세, 5세 아동이 보육시설(유치원 포함)을 이용할 경우 전원 보육료를 지원한다. 3~4세 아동도 소득 하위 70%에게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만약 내년 3~4세 아동에게까지 보육료를 지원하게 되면, 형식상이나마 '의무(무상) 보육'이 완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육시설 아동을 전원 지원한다고 해도 전체 아동의 66% 가량만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3명 중 1명의 아동이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무보육'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아직 보육료 지원 대상에 포함 안 된 소득 상위 30% 가정의 3~4세 아동까지 포함하면, 0~5세 아동의 절반가량이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집에서 부모나 친인척이 돌보는 아동에게 지원하는 양육수당은 현재 차상위 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에만 지원되고 있다. 한해 9만6,000명 정도다. 전체 0~5세 아동이 270만명 정도이니,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소득에 상관없이 양육수당 지원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상뿐 아니라 지원금 액수도 문제다. 금액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0~5세 전원에게 보육료ㆍ양육료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도 무상보육이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현재 시설을 통해 받는 보육료 지원액수는 0세 월 39만4,000원, 1세 34만7,000원, 2세 28만6,000원, 3세 19만7,000원, 4세 17만7,000원, 5세 20만원이다. 이 금액은 국ㆍ공립 보육시설 기준이기 때문에 민간 보육시설에 다니면 개인이 더 내야 한다. 차상위 계층에 지원되는 양육수당은 연령별로 월 10만~20만원이다. 이 역시 실질 양육비와는 차이가 크다.
또한 95%를 차지하는 민간 어린이집의 보육비를 정부가 전부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보육료 현실화뿐만 아니라 보육시장 구조개선도 숙제로 남아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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