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 2005년 1차 학교폭력예방 5개년 기본계획, 2007년 학교폭력 예방ㆍ근절 15대 중점과제 발표, 2011년 폭력ㆍ따돌림 없는 학교 만들기 추진계획….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이번만큼은 땜질식이 아닌 제대로 된 대책을 통해 학교문화를 바꿀 수 없을까. 현재 정부와 교육청 등이 논의하고 있는 대책을 사안별로 점검한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이 사회 이슈가 된 후 교육과학기술부가 출범시킨 학교폭력근절자문위원회는 2일 첫 회의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형사처벌 대상 연령을 현재의 만 14세 이상에서 만 12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설문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의 53.6%가 첫 폭력 시기가 초등학교 때라고 할 정도로 학교폭력의 주연령층이 초6~중2(만 11~14세) 정도로 낮아졌지만 대부분 형사 미성년자에 해당돼 흉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면제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대구의 우동기 교육감은 "중학생인 가해 학생들이 잘못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범죄 의식이 없더라"며 적극적으로 처벌 강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 형사 미성년자 규정이 60년 전인 1953년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에 뒤떨어져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법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형사 처벌 강화는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실익도 없는 위험한 대책이다. 예방이나 교화효과는 적은 반면, 교육을 통해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2의 기회를 너무 일찍 빼앗아 어린 범죄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은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학생들의 폭력수위가 흉포해졌다고는 해도 만 12세는 아직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정도로 성숙한 나이라고 말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만 12세는 인지발달단계로 볼 때 14세와 전혀 다르다. 추론사고능력이 덜 발달돼 행위의 결과가 어떨지 사고하는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만 서울가정법원 공보판사는 "처벌 연령을 낮춰서 해결될 문제라면 아예 형사 미성년제도를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정시설에서 오히려 범죄자들과 어울리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전영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예방처우연구센터장은 "2007년 소년법을 개정하면서 만 12세 이상이었던 보호처분 대상 연령을 10세로 낮췄지만 현실적으로는 10~11세 아동을 소년원에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너무 어린 학생을 중고생 범죄소년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어린 학생들을 형사처벌해 성인 범죄자와 함께 섞어놓으면 범죄자로 유도되는 것 외에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소년법에 명시된 보호처분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엄벌효과는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소년법은 범죄 청소년에게 최고 2년까지 소년원에 송치시킬 수 있지만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는 '보호자 감호위탁'이나 교육에 해당하는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처분이 많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벌어지곤 했다. 전영실 센터장은 "보호관찰 인력을 전문화하고, 시설을 확대해 교정시키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구훈 숭실대 겸임교수는 "여론이 들끓으면 가장 손쉽게 내놓는 대책이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자는 것인데 이런 위압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학교폭력이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범죄 사법처리 과정
현재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은 나이에 따라 형법(14세 이상)과 소년법(10~19세)의 적용을 받는다. 형법은 14세 미만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무조건 소년법에 따라 가정법원에서 보호사건으로 다뤄져 보호처분을 받는다. 14세 이상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법 또는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다. 살인 등 위중한 범죄는 형법에 따라 처벌받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는 소년법에 따라 처분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으며 형사재판을 받던 중이라도 판사나 검사가 처벌보다는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호사건으로 송치된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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