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총선 패배 이후 해외에서 야인으로 지내온 페르베즈 무샤라프(사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귀국과 동시에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최근 정부와 군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파키스탄 정치권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에 모인 8,000명의 지지자들에게 보낸 화상 연설을 통해 "27일부터 30일 사이에 귀국해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과 함께 2013년 총선에 대비할 것"이라며 "나를 향한 어떤 위협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샤라프의 정계 복귀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검찰이 그가 귀국하는 대로 체포하겠다는 방침을 굳혔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반테러법원이 지난해 무샤라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만큼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무샤라프는 2007년 12월 발생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암살을 방조한 혐의로 탄핵위기에 몰리자 영국으로 도피했다. 현 정부의 수장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다.
이런 점에서 무샤라프가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을 강행하는 데에는 모종의 안전판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9일 사우디아라비아 소식통을 인용, "무샤라프는 귀국하기 전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불체포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확약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매년 파키스탄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있어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정부와 군의 대립 관계를 교묘히 활용한 측면도 있다. 자르다리 대통령과 군부는 지난해 11월 후사인 하카니 주미 파키스탄 대사가 미국 측에 "군의 쿠테타를 막아달라"고 요청하는 메모를 전달했다는, 이른바 '메모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외교ㆍ안보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다. 군부가 정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데다 같은 군 출신(육군참모총장)인 무샤라프의 체포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무샤라프는 또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대미 관계를 복원할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 하고 있다. 그는 "내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했다"고 강조했다. 무샤라프는 1999년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오랫동안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BBC방송은 "무샤라프가 수천명의 자국 병력을 희생하면서 알카에다 궤멸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그는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포장해 거간꾼 노릇을 하는데 능하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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