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인권 조례가 시행을 코 앞에 두고 벽에 부닥쳤다. 서울시교육청이 8일 서울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 10만명의 주민 발의로 지난달 19일 서울시의회를 통과할 때도 이견이 분분했던 터라 장차 운명이 불투명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조례가 상위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고 교육감의 정책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재의를 요구했다. 지방교육자치법은 '교육ㆍ학예에 관한 시ㆍ도 의회 의결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교육감이 재의를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상위법과 충돌하는가. 곽노현 교육감이 구속되기 전 서울시교육청이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이대영 교육감 권한대행이 교육감의 정책결정권을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권한대행이지 교육감이 아닌 그가 기존 정책을 뒤집는 것은 월권이다. 남은 것은 '공익을 현저히 저해한다'는 판단인데,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어린 학생을 자살로 내몰 만큼 학교 폭력이 심각한데, 인권조례로 학생을 너무 '풀어주면' 학생 지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었다.
서울 학생인권 조례는 체벌 금지, 복장과 두발 자유화, 교내 집회 허용, 성적(性的) 지향이나 임신ㆍ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이 조례가 시행되면 교권은 추락하고 학교는 통제불능 난장판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인정하고 있는 보편적 권리다. 이 조례가 성 문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그 논리대로라면 교육부가 최근 18세 이하 산모에게 출산 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은 어린 학생들의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는 미친 짓이란 말인가.
부작용을 걱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권 침해나 학교 폭력이 학생 인권 조례 때문인가. 그런 현상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지속돼 온 것이고, 학교가 앓는 병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응축한 결과다. 학생인권 조례를 탓할 게 아니라 입시 중심 경쟁 교육을 없애고, 교사의 잡무를 없애 수업과 학생 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재의 요구가 무색하게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3일 이 조례를 지지하는 서한을 서울시의회에 보내왔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부합하는 서울 학생인권 조례로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어 환영한다"는 게 요지다. "이 조례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 차원의 법 제정에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학생도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인권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차별 받지 않고 사생활을 침해 당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함부로 간섭하거나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학생을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처사다.
인권은 존중 받을 권리다. 존중 받아야 존중할 수 있다. 인권 교육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임을 배워 스스로를 보호하고 남의 권리도 존중하게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친다. 교사에게 존중 받는 학생이 교사에게 행패를 부릴 리 없고, 가난하거나 공부 못하는 친구도 나와 똑같이 귀한 사람임을 아는 학생이 그 친구를 괴롭힐 리 없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ohm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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