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잉주(馬英九) 후보와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대만(臺灣)대 법학과 6년 선후배 사이로 한때는 국립 쩡즈(政治)대 법대교수로 함께 지낸 막역한 동료였다.
마 총통은 1993년 43세의 나이에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법무부장(장관)에 발탁됐다. 3년 3개월의 장관 시절 그는 금권정치ㆍ부패ㆍ폭력조직과의 전쟁 등으로 청렴결백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98년에는 타이베이(臺北) 시장 선거에 출마,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시장을 누르고 당선되는 바람을 일으켰으며 시장 직을 연임했다. 2008년 12대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 전 총통을 또 한번 꺾고 당선됐다.
그는 총통 취임 후 3년 동안 경제를 살리고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는 등 ‘경제 총통’의 입지를 다졌다. 실제로 2010년 경제성장률은 10%를 넘었고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4%에 달했다. 물론 재임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등 문제도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나친 친기업ㆍ친재벌ㆍ친중국 정책은 대만 서민층과, 오래 전 대만에 정착한 본토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정치인인 차이 주석은 ‘대만의 박근혜’로 통한다. 남부 핑둥(屛東)현에서 부호의 딸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는 민진당이 2008년 대선에서 패한 뒤 주석에 취임해 난국에 빠진 당을 추스렸다. 천수이볜 전 총통의 부패 혐의가 드러나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도 부드럽고 끈기있는 리더십으로 당을 재편하고 여론을 모았다. 그가 주석에 취임한 뒤 민진당은 3년간 아홉번 치러진 선거에서 일곱번 승리했다. 미혼인 그는 깨끗하고 솔직담백한 이미지에다 소외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진보적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대만 독립노선을 계승하는데다 원칙주의 성향이 강해,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양안관계에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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