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2007년 카드업계에 주유 할인을 ℓ당 최대 60원(포인트 적립은 80원)으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유 할인액이 ℓ당 최고 130원에 달하는 등 과당경쟁 조짐을 보이면서 카드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A카드사는 작년 ℓ당 100원 할인 카드를 내놓으려다 이 지침에 가로막혀 할인폭을 대폭 축소했다.
정부는 5일 알뜰주유소 전용 신용카드 출시 등을 골자로 한 물가대책을 내놓았다. 올해 1분기 중 일반 신용카드 할인폭(ℓ당 60원)의 2배 수준인 120원을 할인해주는 신용카드를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월 20만원 주유하면 1만4,000원 절약 효과가 있다"고 자찬했다.
정부의 물가대책과 카드대책이 엇박자로 가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드사 수익이 나빠진다며 주유 할인폭을 제한해 왔는데,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는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주유 할인폭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카드업계와 소비자들은 "아전인수격이고 이율배반적인 대책"이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8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ℓ당 120원 할인해주는 알뜰주유소 전용 카드의 타당성을 두고 유관기관 간 입장 차이가 확연하다. 이 카드 출시를 주도한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이미 해당 카드사와 3월 초 출시하기로 협의를 마쳤다"며 "할인 금액은 카드사가 모두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 발급 심사를 맡고 있는 금감원 측 생각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2007년 내려진 카드 관련 지침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ℓ당 60원을 초과하는 부분도 카드사가 부담하는 조건이라면 발급을 허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알뜰주유소 전용 카드 출시를 떠맡은 농협카드로선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농협이 알뜰주유소를 주로 운영하고 있어 지경부의 카드 출시 요청에 응했지만, 그렇다고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다. 농협카드 관계자는 "주유소 가맹점 수수료가 1.5%인데 ℓ당 120원을 할인해주면 할인율이 5%를 넘는다"며 "120원 할인을 해줘도 카드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수익성 구조를 금감원에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범용카드도 아닌 주유전용카드가 주유 부문에서 발생한 손해를 다른 부문에서 메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 관계자는 "물론 고객 정보를 보험사 등에 판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할인액을 일부 보전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결국 고객들을 기만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어떤 식으로든 절충점을 찾아 이 카드가 출시되더라도, 앞으로가 더 문제다. 주유 할인폭을 확대한 카드사들의 유사 상품 출시를 막을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임원은 "카드사들이 정부 물가안정시책에 부응해 주유 할인폭을 확대한다고 나서면 막을 근거가 있겠느냐"며 "정부의 정책 필요성에 따라 잣대가 오락가락 하면 신뢰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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