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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난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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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난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입력
2012.01.0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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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때 우리 집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소동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아이는 1년 전만해도 크리스마스 몇 주전부터 들떠 있었다. 원하는 선물을 꼭 달라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도 쓰고 기도도 했다. 심지어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요'는 캐럴 가사만 얘기해주면 얌전해지기까지.

그러던 아이가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서는 부쩍 산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러 친구들로부터 "산타는 없대"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엄마가 선물 놓는 것을 '목격'했다는 친구, 엄마로부터 "사실 선물은 내가 준 것이었어"라는 구체적 '증언'까지 확보한 친구의 예도 들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산타와 그 선물을 반신반의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니야. 산타는 있어"라고 얼버무리면서, 매년 그랬던 것처럼 산타의 선물을 준비했다. 성탄절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는 가장 먼저 거실로 달려갔고, 트리 아래에 있는 선물을 들고 왔다. 갖고 싶어하던 선물 앞에서 산타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역시 아이는 아이니까.

사건은 그 다음날 터지고야 말았다. 다용도실에 들어 갔던 아이가 화난 표정으로 나오는데, 그 손엔 알록달록한 종이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산타 선물을 쌌던 바로 그 포장지. '증거물'를 확실하게 없앴어야 했는데, 포장지가 남은 게 아까워 다용도실에 두었던 걸 아이가 발견한 것이었다.

아내는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양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이게 뭐냐고, 산타 포장지가 왜 여기 있냐고 따져 묻는 아이에게 아내는 얼떨결에 "이게 왜 여기 있지?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서 선물 포장하고 두고 가셨나?"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더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말을 그대로 믿었을 것 같지는 않다. 산타의 실체를 확실히 알았을 수도 있고, 아이면 '산타가 없으면 선물도 없다'는 생각에 내년 성탄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실용적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덕분에 나 역시 진실공개를 1년 뒤로 미룰 수 있게 돼 다행이다.

가끔은 산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나 역시 내 아이만할 때 산타의 비밀을 알았고, 하지만 별 충격이나 배신감 없이 그냥 넘어갔던 것 같던 것 같다. 하물며 요즘 초등학교 2학년이라면 훨씬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까. 내가 아이를 너무 어리게만 보는 건 아닐까.

어쩌면 산타 없는 세상이 두려운 건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타는 곧 동심인데 산타를 잃는 순간 아이가 동심도 잃게 되는 것은 아닐지, 동심이 사라지면 곧바로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닌지, 대체 아이에게 이 가시덤불을 어떻게 헤쳐나가라고 가르쳐야 한단 말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게 빠르고 이르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동요보다는 랩, 율동보다는 웨이브가 대세다. 3,4학년만 되면 뛰어 노는 아이 찾기가 힘들고, 엄마들 사이에선 입시 얘기가 나온다. 이미 확인됐듯이 왕따와 학교폭력은 경악할 지경이고, 그 연령대가 점점 낮아진다는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마음을 달래줄 산타는 정말로 없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모두 어른 책임이다. 아이들은 동심을 버린 적이 없다. 어른들이 빼앗은 것이다. 나 역시 남부터 생각하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얘기하다가도 이내 경쟁심을 갖고 1등이 되라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부모다. 한편으론 아이를 동심에 머물러 있게 하고 싶고, 한편으론 세상을 빨리 깨우치기를 바라는 모순된 소망을 갖고 있다.

결국은 어른들이 바뀌어야 한다. 산타가 원래 그랬듯이, 부모든 교사든 정치인이든 이 세상 어른들이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먼저 챙겼던 산타의 모습을 찾는 수 밖에는 없다. 1년 후 성탄절엔 아이가 산타에 대해 뭐라고 하든, 나 스스로 좀 더 성숙하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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