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누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대보라 할라치면 떡볶이나 어묵, 순대와 간 정도를 읊는 게 나다. 대체 누구의 재주로 시작된 음식이간데 온갖 먹을거리로 넘쳐나는 세상, 걷다 못해 뛰기 바쁜 사람들을 삼삼오오 이 작은 천막 안으로 불러 모으게 된 걸까.
각기 다른 맛과 메뉴를 가졌다지만 이 추운 겨울날, 엇비슷한 모양새의 노점상들이 줄줄이 늘어선 거리에서 가게마다 손과 손에 뜨거운 어묵 국물이 든 종이컵을 들고 후후 마셔가며 삶의 온기를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나는 왜 그렇게 '情'이라는 한자를 명조체의 붓으로 그리고 싶던지.
몇 년 전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예술적으로 뒤섞인 도시 곳곳을 둘러봤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부의 한 후미진 동네에서 한치 다리를 튀겨 팔던 한 노점상이었다. 채 기름이 다 빠지지 않은 한치 다리를 누런 종이봉투에 담아주며 환하게 웃던 사람, 그 스페인 사람. 3월에 강남에서 무슨 국제적인 행사가 열린다지.
VIP 손님들이 오는데 무질서한 모습을 감춰야하지 않겠냐며 그 자리에 돌 화분과 벤치를 놓으려 용역들이 노점상들을 내쫓는다지. 디자인 특화거리 조성한다니, 먹고살 일 막막한 미술대학 졸업생들 노점상 천막에 그림이라도 그리게 하면 어떨까. 얼토당토않은 상상력이라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평생을 때려 부수는 만행보다는 나을 테니.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