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을 처음 만난 건 2년전 테드엑스연세 컨퍼런스에서였다. 나란히 연사로 나섰던 것이다. 당시 그에게 특별한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다. 하버드를 나왔다는 것,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료과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게 기특하게 여겨졌던 정도였다.
정치를 코미디로 만들어가는 청년
그때 예견했어야 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과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얼핏 사회적기업 '벨'의 설립자 얼 마틴 팰런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그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였다.
1992년 팰런은 도심의 빈민가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BELL(Building Educated Leaders for Life)을 설립했다.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면서 우연히 보스턴 빈민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것이 계기였다.
팰런의 꿈은 정치가였다. 그러나 '벨' 설립 후 사회적기업가가 됐다. '벨' 설립 초기 팰런은 하버드 로스쿨 은사인 찰스 오글트리 교수, 로버트 피터킨 하버드대 교육학 교수 등을 이사로 영입해 공신력을 높였으며, 친구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설득, 여름방학 교육 프로그램에 연방기금을 지원하는 '스텝업 액트'법안을 상원에 상정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준석은 팰런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같지만 팰런이 정치의 꿈을 접고 정치를 끌어들인 반면, 이준석은 그것을 자신의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 이준석이 요즘 정치권의 관심인물로 부상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최연소 비대위원으로 위촉된 뒤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다. 강용석, 전여옥 의원 등과 트위터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비대위 회의에선 20대 청년다운 튀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에게 "털고 가야 할 의혹이 있다"고 하는가 하면 "국민, 국민 하는데 전혀 감동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엔 거침없이 "김근태"라고 말했다.
좌충우돌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고, 또 자신에게로 관심을 끌어오는 방법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불안하다.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항심(恒心) 혹은 철학이 보이지 않아서다. 강용석 의원이 정치무대를 개그 판으로 이동시켰다면, 이준석은 정치 자체를 코미디로 만들어가고 있다. 걱정이다. 광활한 개활지가 아닌 음습한 늪지대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불길한 예감도 든다. 기시감이다. 각 분야에서 '난다긴다'했던 사람들도 정치의 늪에 빠진 뒤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익히 봐왔던 터다. 물론 그 자신에게 달렸다. 웃자란 벼가 낫질 당하는 법이고, 모난 돌이 정 맞는 이치를 알면 된다.
치기 버리고 목표 뚜렷이 정해야
전여옥 의원은 이준석을 겨냥해'소년 급제'라고 했다. 소년 급제가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소년 급제가 반드시 입신출세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비대위원 역할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전제할 것이 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일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방향과 목표를 엄정하게 설정한 후 움직여야 한다.
팰런은 정치의 꿈을 접은 대신 정치를 활용했다. 이준석은 알량한 이력을 내세워 정치권을 맴돌고 있다. 사회적기업가 팰런을 지원했던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치기어린 야심가 이준석의 후견인 박근혜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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