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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골 주민들, 자연 노래하는 시인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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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골 주민들, 자연 노래하는 시인 되다

입력
2012.01.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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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죽곡농민열린도서관 엮음/강빛마을 발행·240쪽·1만원

'한 여름 뙤약볕에 고추밭을 맨다./ 봄부터 시작된 풀매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중략)/ 아~/ 고랑이 저만치 도망가 있다./ 축지법을 써서 매어도 힘겨울 판에/ 엿가락 늘어지듯 고랑이 늘어났다.'(김현지(45)씨의 '풀매기' 중)

'올해 논에다 콩 심었더니/ 거름이 너무 많아 키가 커서/ 베어줄까 걱정을 했는데/ 마침 노루가 들러 적당히 끊어 먹어서/ 올해 콩 농사는 풍년 들겠네'(정계순(70)씨의 '밭농사' 중)

전문 시인의 세련된 언어적 마술은 없지만 삶의 현장에 벌어지는 농사와 자연에 대한 감각이 풋풋하고 애달프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최근 엮어 낸 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에 담긴 시들이다. 114편의 시가 담긴 시집엔 이렇듯 생활과 노동과 자연에 대한 진솔한 감정과 투명한 언어로 가득하다.

시의 지은이들은 7세 어린이부터 88세 할머니까지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의 주민들이다. 2,000명 남짓한 주민 중 105명이 시집에 이름을 올렸다. 수년간 마을도서관을 중심으로 펼쳐진 농민인문학 강좌 등 문화 활동이 마을시집 만들기로 이어진 것이다.

시집 출간의 직접적 계기는 김재형 마을도서관 관장이 지역 문화재단의 공모사업에 신청, 1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 2004년 마을 도서관을 개관하면서부터 시집 출간을 꿈꿔왔다는 김 관장은 "시집 출간 제안에 주민들이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며 헛웃음을 짓고, 도서관 운영위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막상 마을 시문학상 공모를 하자 하나 둘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노인들 사이에서도 시쓰기 열풍이 불었다"고 말했다.

우수작에 선정된 작품은 최태석(61)씨의 한시 '牛 -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다. '養牛由來歲月深(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石田耕牛深時間(돌투성이 밭 갈 때가 언제이던가) 牆耒不知何歲月(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歲月流去銹故障(세월이 가는 동안 녹이 슬고 말았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평생 농사를 지은 최씨는 어린 시절 배운 한문을 잊고 살다 시 공모를 계기로 한시를 폭발적으로 쏟아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가작은 88세의 김봉순씨가 쓴 '내 인생'으로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지/ 이제는 몹쓸 놈의 병을 얻어/ 발 한 짝도 내디딜 수가 없네'라며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호박덩굴 자라는 모습과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담담하게 담았다.

시집 한 대목을 채우고 있는 어린이들의 시도 눈길을 끈다.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사랑 '애'/ 국가 '국'/ 노래 '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그런데 왜 나는/ 그런 마음이 하나도 안 생기지?'(최호원(8)군의 '애국가는 어렵다')

시를 쓰면서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자신감을 갖게 됐고, 시집이 나온 뒤엔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라고 전한 김 관장은 "농민들이 자기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잃으면서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시 쓰기로 문화적 자생력을 키우고 싶었다"며 "매달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인문학 강좌를 여는 등 꾸준히 인문학을 통해 같이 공부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그 결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년에 한번씩 마을 문집을 내며 농민의 자생적 문화를 일궈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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