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시사/유종호 지음/민음사 발행·295쪽·1만8,000원
문학사 정전(正典)의 특권적 지위를 해체하며 열린 텍스트 읽기를 지향하는 소장 국문학자들의 연구 경향에서 보면 원로 비평가 유종호(77) 연세대 명예교수는 반대편의 봉우리다. 그에게 비평의 1차 기능은 "읽을 가치 있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하는 것", 문학사의 주 목적은 "읽을 만한 작품의 목록을 작성해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근대시사> 는 1920년에서 1945년까지 근대 시사(詩史)에서 어떤 작품이 명작인지를, 폭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통찰로 풀어 쓴 책이다. 정전의 권위가 퇴락하는 상황에서 정전의 의미를 되짚는 저자의 목표는 일반 독자들이 작품을 즐기고 이해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딱딱한 서술에서 벗어나, 명작과 범작을 가차없이 구별하면서 시적 완성도나 시대적 맥락을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이 시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데 유용할 듯하다. 한국근대시사>
1920년대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지용을 "최초의 전문적 시인"으로 평가하는 저자는 그에 앞선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의 시적 성취를 살펴본다. 김소월에 대해서는 "초심자를 시 세계로 안내하는 호소력 있는 순정 서정시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시집 <님의 침묵> 에 대해서는 "불가사의한 경이"라고 극찬한다. 님의> 님의> 진달래꽃>
저자는 1930년에 등장한 '시문학파'의 김영랑에 대해선 "서정시의 근대적 세련이란 새 경지를 보여준 것"으로, 정지용은 "스스로 시인임을 자각하고 시작 행위를 예술 행위로 열렬히 의식한 최초의 우리 시인"으로 높이 평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상에 대해서는 "모더니스트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문인"이며 뛰어난 산문가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시인으로서는 "무의미한 허드레나 낙서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이 너무 많다"며 깎아 내렸다. 이상이 일본말 번역 같은 시를 앞세워 우리 언어를 오히려 훼손한 것으로 보는 저자는 "'한발 앞서기'에 들려 있었던 그는 오늘날 경쟁적 시험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청소년의 난경을 앞당겨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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