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전당대회 과정에서의 '돈봉투' 제공을 폭로하고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즉각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금품 살포를 둘러싼 정치권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비대위를 출범시켜 쇄신 드라이브를 걸던 한나라당으로선 '초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떠돌던 전당대회 대의원 매수 행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더구나 검찰 조사로 금품 제공자와 돈을 받은 의원들의 이름까지 공개될 경우 당으로선 치유 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5일 "정치권에서 쉬쉬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다"며 "이번 일이 사실이라면 당이 해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당 안팎에선 비대위가 이번 파문을 쇄신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으로선 악재이지만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 과제를 안고 있는 비대위 입장에선 쇄신 추진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비대위가 이날 신속하게 검찰 수사 의뢰를 결정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이다.
이날 오전 열린 비대위 회의에선 "고 의원의 폭로 문제를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바로 수사를 의뢰하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됐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의결하자"며 정면 돌파에 힘을 실었다고 한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당의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정면 돌파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위원장은 당 대표 시절인 2004년에도 '천막당사'라는 초강수를 통해 '차떼기 정당'의 오명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이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 연루 인사들의 공천 배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번 파문으로 친이계 구주류는 당내 '역학 구도'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비대위로부터 '용퇴' 압박을 받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금권선거'연루 세력으로 지목된 것이다. 18대 국회 들어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당선된 3명 모두 '범친이계'로 분류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내에선 "이번 돈봉투 파문이 친이계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반면 박 위원장의 행보에도 오히려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위원장은 세 차례 치러진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은 만큼 이번 파문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용퇴론'을 둘러싼 일부 비대위원과 일부 친이계 의원의 갈등과 관련해서도 앞으로 비대위 쪽으로 힘이 쏠릴 전망이다. 쇄신 국면에서 친이계 등 구주류의 물갈이가 더욱 용이해질 것이란 얘기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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