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고에 지친 국민들 "정부가 물가·최저임금 적극 관리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정부에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물가관리와, 최저임금보장 등 임금규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천정부지로 뛴 물가와 실질임금 하락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기획해 전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공생발전을 위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정부에 대한 기대는 2004년보다 크게 높아졌다. 응답자의 65.6%가 '정부의 물가 관리'에 찬성, 7년 전(58.7%)보다 6.9%포인트나 늘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4.0%로 2008년(4.7%) 이후 3년 만에 4%대에 진입하면서, 직장인들은 점심값조차 부담스러워진 상황이 된 탓이다.
'최저임금 등 정부의 임금 규제'에는 56.7%가 동의, 2004년 조사(54.8%)때보다 1.9%포인트 높아졌다. 현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6.1%(2009년), 2.75%(2010년), 5.1%(2011년), 6%(2012년)로 꾸준히 올랐지만 전 정권의 8.3~13.1% 수준에는 한번도 미치지 못했다. 최근 급등한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한편 '4인 가족이 건강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월소득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4.9%가 '300만원 초과~400만원 이하'라고 응답했다. 7년 전 가장 많은 응답은 '250만원 초과~300만원 이하'(26.7%)였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랄 수 있는 기업 규제 완화, 재정안정 등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커졌다. 기업 규제 완화(50.1%), 정부지출 감축(52.2%)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은 7년 전(각 56.7%, 56.1%)보다 줄어들었다. 고용창출의 일환으로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 62.7%로 7년 전(73.3%)보다 크게 낮아졌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활용돼 온 공공근로 등이 근본적 일자리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분야별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는 '노인 생계보장'(72.3%)이 정부 책임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한 탓으로 해석된다. '양질의 교육제공'(70.4%), '저소득층 대학생 재정지원'(69.9%)도 정부 책임이라는 인식이 높았다.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시장원리를 도입해 교육을 다양화하고 등록금을 자율화한 것과는 반대로 국민은 정부가 책임져 줄 것을 바라고 있어 앞으로 핵심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시대의 위기감에 따라 '성장이 필요한 산업에 대한 지원'(71.2%)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절반이 "정부가 병원·은행도 운영해야"
민영화에 지친 것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4년 '공생발전을 위한 국민조사'설문과 비교해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병원ㆍ금융ㆍ전력ㆍ대중교통 등 공공적 성격이 있는 기간산업을 민간이 아닌 정부에서 맡아야 한다는 답변이 대폭 늘어난 점이다.
물가상승과 소득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기본적인 서비스를 정부가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병원은 주로 정부부문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답변이 2004년 38.1%에서 이번에 49%로 대폭 늘었다. 병원을 정부가 운영하길 바라는 국민이 절반이나 되는데,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의료영리병원을 도입해 민간부문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현 정부의 방향과는 전면 배치되는 반응이다.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7%에 불과해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고, 민간병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비 등을 확대하면서 불만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차상위 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 4명 중 1명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고, 노인 3명 중 1명이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런 현실을 잘 말해준다.
또 금융기관을 정부부문에서 운영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45.6%에서 55.9%로 증가해 절반을 훌쩍 넘었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의 무책임과 수수료 장사 등을 통한 과도한 성과급ㆍ연봉 잔치가 도마에 오르면서 금융권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정전사태 등으로 공급부족 위기의식이 고조된 전력사업에 대해서도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비율이 68.1%에서 80.3%로 대폭 높아졌고, 대중 교통수단을 주로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비율도 64.8%에서 67.9%로 높아졌다.
특이한 점은 의료서비스 제공 등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라는 답변은 83%에서 68.4%로 상대적으로 줄어 들었는데도, 정부 운영을 바라는 답변은 더 늘었다는 점이다. 즉 현 정부 들어 "규제완화"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좁게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고 해도, 국민들의 마음에 정부 개입을 원하는 필요성은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 소득세 안내는 가정도 "소득세 높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소득세를 내지 않은 가정조차 "우리 가족들이 부담하는 소득세가 너무 높다"고 답해, 세금에 대한 무지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복지지출 확대를 위한 증세 논의에 상당한 장애가 될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공생발전을 위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가구소득이 월평균 100만원 이하인 가정의 53.6%가 "가족들이 부담하는 소득세 수준이 높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소득이 연 1,200만원 이하인 경우는 각종 공제에 따라 소득세를 안 내며,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한해 급여 2,000만원의 평균세율이 0.5%에 미달해 사실상 면세점(免稅點)에 해당한다. 근로자ㆍ자영업자 중 40~45% 가량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김미숙 보사연 연구위원은 "세금 체계에 대해 잘 모르고, 막연히 세금부담이 많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결과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는 61.4%가 본인이나 가족이 내는 소득세가 "높다"고 답한 반면, 기업이 내는 세금에 대해서는 32.1%만 "높다"고 답했다. 기업이 내는 세금에 대해서는 낮다는 답변(38.8%)이 더 많았다.
더구나 7년 전과 비교하면 스스로 정치성향이 보수라는 답변은 대폭 줄어들었는데도, 세금 지출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보수적인 답변이 늘어났다. '세금이 늘더라도 복지지출 증가를 지지한다'는 답변은 2004년 56.8%에서 지난해 44.9%로 줄었다.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가계 부담이 증가할 수 있는 증세에 대해 부정적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불확실한 복지혜택 확대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확실한 세금부담 감소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보사연 조사에서는 '저출산ㆍ고령화 등의 문제로 인해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면, 나는 복지예산을 더 부담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비율이 49.2%로 그렇지 않다는 비율(20%)보다 두 배 높았었다. 보사연은 '저출산ㆍ고령화'문제를 지칭했기 때문에 찬성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복지ㆍ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질문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답변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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