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소득이 복지 쟁점의 판도를 가르는 기준이 돼가고 있다. 한국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기획한 '공생발전을 위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고소득층일수록 감세와 선별복지를 지지하고 저소득층일수록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
복지 사안을 둘러싸고 자신이 저소득층이냐, 중산층이냐, 고소득층이냐에 따라 생각이 뚜렷하게 갈린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자신의 정치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고소득층에서 가장 높아 모순된 의식을 드러냈다.
고소득자 복지확대 반대, 감세 지지
복지 논쟁이 올 선거의 최대 화두인 것은 확연하나 국민 대다수가 복지확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복지쟁점에 대한 의견은 소득별로 분석했을 때 뚜렷이 갈렸다. 감세냐, 복지확대냐를 선택한 답변이 대표적이다.
'사회복지 지출이 감소하더라도 세금을 줄이는 것을 지지한다'(감세)와 '세금이 늘더라도 사회복지 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을 지지한다'(복지확대)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전체 응답자의 55.1%가 감세에 손을 들었다. 복지확대를 선택한 비율은 44.8%였다.
이 결과를 소득별로 보면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은 감세(49.1%)보다 복지확대(50.9%) 지지자가 약간 더 많았지만 400만원 초과의 고소득층은 감세 지지가 65.2%나 되고 복지확대는 34.8%에 불과해 판세가 뒤집어졌다. 감세 지지는 소득이 높을수록 크게 나타났다.
반면 연령별 차이는 뚜렷하지 않았다. 20대부터 60대 이상의 전 연령대에서 감세를 지지하는 비율은 50.5~57.4%, 복지 확대는 42.6~49.5%로 나타나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별복지 대 보편복지 논쟁도 마찬가지다. '세금부담을 최소화해 필요한 사람만을 돕는 것이 좋다'(선별복지)와 '세금부담을 늘려 모두가 복지혜택을 받는 것이 좋다'(보편복지)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가까운 쪽을 고르라고 주문했더니 소득이 높을수록 선별복지를 택한 비율이 높았다.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100만원 이하와 100만원 초과~200만원 이하 집단은 각각 61%, 64.4%가 선별복지를 선택한 반면, 400만원 초과 고소득 집단은 69.9%로 응답자가 더 많았다. 전체 평균치는 선별복지를 지지하는 비율이 64.9%, 보편복지가 35.1%였다.
지난 해 정치권에서 뜨겁게 붙었던 '무상의료' 논쟁 이후 주요 복지 쟁점으로 떠오른 의료서비스 확대에 대해서도 소득에 따라 생각이 갈렸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혜택을 받아야 한다'(동등혜택)와 '여유가 있으면 자기 돈으로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개인선택)를 두고 400만원 초과 고소득층은 61.1%가 '개인선택'을, 100만원 이하와 100만원 초과~2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은 각각 57.6%, 52.7%가 '동등혜택'을 바랐다.
'공적부조에 대한 정부지출이 증가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는 응답자의 50%가 '증가', 41.3%는 '현수준', 8.7%가 '감소'를 택했다. 월평균 소득 100만원 이하 집단이 증가를 선택한 비율(58.3%)이 가장 많았고, 400만원 초과 고소득층에선 47.3%로 가장 적었다.
복지확대 반대해도 "나는 진보"
이런데도 우리 국민은 스스로 보수라는 이들보다 진보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8.8%가 '진보', 51.4%가 '중도'라고 답했다. 자신을 '보수'라고 인식하는 이들은 19.8%로 가장 적었다. 심지어 고소득층에서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32.7%로 어느 소득구간보다 많았다.
고소득층에서 진보라는 응답이 높은 것은 일반적으로 학력이 높으면 진보 의식이 높은 경향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체적 쟁점으로 들어가면 복지확대에 반대하고 감세를 지지하는 등 전형적인 보수성을 드러내, 스스로 밝히는 이념적 성향과는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모순은 복지확대를 결국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지출'로 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현실적 문제로 인식한 응답자들이 이념성향과 일치하지 않은 답변을 했다는 얘기다.
김미숙 보사연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은 본인이 내는 세금보다 정부가 지원하고 보호해주는 부분이 더 커야 한다고 인식해 보편적 복지를, 고소득층은 증세해서 복지혜택을 넓힐수록 자신이 내야할 돈이 더 많아지니 최소한의 빈곤층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국민들이 자신이 진보냐, 보수냐를 판단하는 이념성향을 떠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복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답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김지은 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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