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기나긴 밤이 유난히 더 길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잠드는 게 쉽지 않은 사람들. 겨울 밤이 이들에겐 낭만이 아니라 고통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부터 스멀스멀 불안이 찾아온다. 어찌어찌 해서 어렵게 잠이 들어도 몇 번이고 눈이 떠진다. 옆에 누워 있는 사람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잠이 깬다. 출근해서도 계속 몽롱하고 어지러운 상태. 집중이 안돼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불면증은 딱히 약이 없다. 수면제는 엄밀히 말하면 치료약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줄 뿐 계속 쓰면 오히려 너무 의존하게 돼 문제가 더 커진다. 저녁에 상추를 먹거나 자기 전 샤워하는 것도 불면증이 심하면 별 효과 못 본다.
잠 안 오는 이유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한의학에서는 불면증의 원인을 크게 6가지로 구분한다. 내가 왜 못 자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민하다면? 스트레스성
성격이 남달리 예민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꽉 막혀올 때가 있다. 감정 조절이 마음대로 잘 안돼 자신도 모르게 쉽게 화가 나거나, 허리와 다리에 기운이 빠지면서 저려오기도 한다. 한의학의 관점으로 보면 대부분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지 못해 가슴 속에 울화가 쌓여 있어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평소 이런 증상을 자주 겪는다면 불면증도 함께 올 수 있다. 불면증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인 스트레스성(신경성) 불면증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들을 찾아 없애야 한다. 가슴 속에 쌓인 열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이것만 성공해도 크게 나아질 수 있다. 증상은 심하지만 잠 못 이루는 원인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치료 효과는 좋은 편이다.
아랫배 약하면? 갱년기형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의 몸에선 여성호르몬이 줄고 자궁 기능이 떨어지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한의학에서 자궁은 몸의 열에너지를 담아두는 곳이다.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열에너지가 온몸을 돌아다니게 되고, 이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식은땀이 나면서 불면증, 우울증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의학에선 설명한다.
이런 증상을 꼭 갱년기 여성만 겪는 건 아니다. 생각이나 고민이 많은 20~30대 여성이나 40~60대 남성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지스한의원 최찬흠 원장은 "하초(아랫배)의 기운이 줄어드는 게 원인"이라며 "체내의 열을 제어해주는 약재로 치료하면 좀더 쉽게 잠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심장 문제? 심기허형, 비장 문제? 비기허형
한의학에서 말하는 심기허형 불면증은 스트레스성과 반대로 심장이 약하고 가슴 부위가 차 잠을 못 자는 상태다. 얼굴이 창백하고 손발이 차며, 몸무게는 늘지만 기운이 없고 피로한 느낌이 잦다. 스트레스성 불면증을 치료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심장이 점점 지쳐 심기허형 상태로 바뀌기도 한다.
심장과 함께 비장도 수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의학자들은 비장이 우리 몸에서 토양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비장이 튼튼해야 몸 전체가 안정된다는 얘기다. 비장이 약하면 정신집중이 잘 안 되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해져 잠도 잘 못 잔다. 소화불량이나 설사도 자주 생긴다. 이런 비기허형 불면증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나이 들면? 노인성, 꿈 잦으면? 음허형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밤잠이 준다. 밤낮을 구별해 신체리듬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서다. 자궁과 마찬가지로 몸의 열에너지를 저장하는 콩팥의 기능도 저하된다. 그래서 갱년기형과 비슷한 노인성 불면증이 나타난다. 신장 기능을 보충하고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주면 좋아질 수 있다.
꿈을 자주 꿔도 불면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꿈을 꾼다는 건 그만큼 깊이 잠들지 못했다는 의미다. 때문에 다음날 종일 피곤하고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 한의학에선 몸의 기운을 음(저장능력)과 양(활동능력)으로 나눈다. 꿈을 꾸는 건 음기가 줄어(음허) 밤에도 양기가 지속되는 상태라고 본다. 약간 들뜬 상태라는 소리다. 최 원장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음기를 보충하는 치료를 받으면 나아진다"며 "불면증도 원인과 동반 증상에 따라 개인별 맞춤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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