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을 번역하며 국내에 학문간 대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최재천(58)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그가 요즘 강조하는 화두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심비우스'다.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외 다윈 관련 학자들을 만나며 새로 만든 말이다. 이번 주 나란히 펴낸 새 저서 <다윈 지능> (사이언스북스 발행)과 <통섭의 식탁> (명진출판 발행)은 통섭에서 호모 심비우스에 이르는 생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전자가 다윈의 진화론을 에세이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책이라면, 후자는 그의 독서목록을 일상과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통섭의> 다윈> 통섭>
다윈은 SNS의 달인
서구의 지성계는 근대의 대표 학자로 다윈을 꼽는다. 변화를 통한 생존을 설파한 다윈의 진화론은 2,000년 서구 지성사의 근간인 기독교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뒤흔들었다. 개인의 본성과 심리, 행동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다윈의 이론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최 교수 역시 학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다윈의 계보에 둔다. "저를 포함한 진화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연구에 보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많은 연구를 해도 제 것이 아니라 다윈 것이 되는 것이지요."
4일 이화여대 통섭원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다윈을 "소통에 성공한 과학자이자 대단한 문필가"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다윈이 시골에 틀어박혀 혼자 연구했던 은둔의 학자라고 배웠지만, 사실은 요즘 말로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한 사람입니다."
최 교수는 "다윈이 그렇게 많은 연구업적을 냈던 비법은 바로 소통"이라면서 "1만4,000통에 이르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주변인들을 자기 연구에 부려먹었다"고 소개했다. 다윈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가족이 자기 연구에 헌신하도록 했고, 토머스 헉슬리를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이 자신을 대신해 지성사회와 논쟁하게 만들었다. "다윈이 지금 살아있다면 이메일 체크하면서 한 손에는 트위터, 한 손에는 페이스북 하며 온갖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았을 거예요."
책 제목을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여럿이 협력을 통해 얻게 된 지적 능력)에 빗대 '다윈 지능'이라 지은 것도 다윈의 그런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다윈 지능> 은 지난 150여년간 진화론이 발전한 과정과 논란, 현대 진화론의 핵심을 다룬 책이다. 진화론이 생물학 범주를 넘어 철학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소개한다. 다윈>
그가 강조하는 '호모 심비우스'도 진화론의 연장선에 있다. "진화는 일정한 방향이 없으며 언제나 불리하거나 유리한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생태계는 언뜻 보기에 약육강식 논리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진화하고 있죠." 따라서 인류도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잘 쓴 과학책은 문학처럼 읽힌다
다윈은 당시로서 혁명적인 사상을 설득하기 위해 딱딱한 논문형 글쓰기가 아닌 에세이식의 글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다윈은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려고 굉장히 노력한 사람"이라며 "다윈 글을 문학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함께 출간된 <통섭의 식탁> 에는 다윈의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 <찰스 다윈 서간집> 을 비롯해 인문, 사회, 자연과학 서적 56권에 대한 서평이 담겨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코스 요리에 빗대어 소개한다. 찰스> 찰스> 통섭의>
애피타이저에서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를, 메인 요리에는 자연과학 책을, 디저트로는 과학자들의 생애에 관한 뒷이야기를 담은 책을 묶었다. 인문학, 자연과학 경계를 넘나드는 책들은 퓨전 요리 코너로 소개한다. "과학책도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잘 쓴 과학책은 문학작품처럼 읽힌다. 시적(詩的)인 제목의 과학 논문도 많다"고 말했다. 조너던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 , 엘리자베스 마셜 토머스의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등을 "내용도 재밌지만 문장도 수려한 멋진 과학책"으로 소개했다. 인간들이> 핀치의>
그는 두 권의 책을 또 준비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인터뷰 '다윈은 미래다'를 묶은 책과 국내 교육제도를 비판한 책이다. 그는 "다들 다음 대통령은 복지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설프게 복지에 투자하기보다 교육에 투자하자는 내용"이라며 "올해 시기를 잘 맞춰 내면 주목 받을 것 같지만 정치에 휘말릴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에 연재한 인터뷰는 '12명의 사도들'이란 제목으로 낼 생각입니다. 인터뷰한 학자들의 이름을 보고 하버드대학 출판부 편집장이 내자고 조르고 있어요.(웃음) 잘 쓰면 괜찮은 책이 될 것 같아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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