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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소가 개나 같아야 키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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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소가 개나 같아야 키우지

입력
2012.01.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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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할 것을 봤다. 소다. 앙상하게 마른 다리로 빈 사료 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소. 듣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 소다. 굶어 죽은 소들 다음으로 굶어 죽게 생겼으니 제발 살려주면 안 되겠냐는 소 울음소리.

누가 한우라도 사줄라치면 자정에도 택시 불러 타고 고깃집으로 달려가는 게 난데, 그렇게 귀한 것이 소이고 여전히 사먹을라치면 비싼 것이 쇠고기인데, 글쎄 송아지 한 마리 값이 만 원이란다. 어림잡아 소설책 한 권 값이고 호텔 라운지 커피 한 잔 값인 것은 고사하고 사료 값만도 못한데, 어느 누군들 축산 농가의 가만 손 놓을 수밖에 없음을 나무랄 수 있으랴.

산 채로 땅에 파묻힌 소들이 땅을 뚫고 펑펑 솟아오르는 걸 서커스 구경하듯 나 몰라라 했던 때로부터 지금껏 소 먹을 궁리에 바빴던 나는 아무런 대책도 입장도 없이 그저 길을 막고 말을 막는 이 나라 이 정부에 아무 기댈 것 없음을 잘 아는 까닭에 알고 지내는 분 가운데 소 잡는 일이 업이신 분께 연락을 드렸다.

"사료 대드릴 테니 제 사료 먹고 큰 소는 제게 파시면 안 돼요?" "저 가게 접고 청주에 세탁소 차렸시유. 도통 소 갖고는 장사 못 해먹어서유." 어린 송아지는 부뚜막에 앉아 울 힘조차 없는데, 고속도로 다 막아서 엄마소는 마지막 서울 구경도 놓쳤는데, 국회의원들께선 연일 출판기념회에서 축배들 드느라 바쁘시다. 이 많은 책들 다 언제 쓰셨담!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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