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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국내 원예치료학 박사 1호 최영애씨 "우리 사회 학교 폭력·자살, 정원 가꾸기 교육으로 치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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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국내 원예치료학 박사 1호 최영애씨 "우리 사회 학교 폭력·자살, 정원 가꾸기 교육으로 치유 가능"

입력
2012.01.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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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차 페라리를 생산하는 이탈리아 소도시 마리넬로의 페라리 공장. 연간 7,000여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련된 자동차 부품이나 기계보다 안팎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정원들이다. 첨단기술과 수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곳은 녹지가 전체 면적의 30%에 이르러 공장이 아닌 식물원처럼 보인다. 싱그러운 녹지 공간은 공장의 탁한 공기를 깨끗하게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식물이 살 수 없는 곳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철학에 따라 2007년 조성됐다.

정원은 이제 단순히 보기 좋은 것, 있으면 좋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사는 도시인들에게 정원은 자연을 선사한다. 삭막한 도시 환경에 갇혀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원은 특히 중요하다. 잃어버린 감성과 휴머니즘을 되찾고 협동심과 자아의식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식물을 가꾸는 것 자체가 인성 교육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내 최초의 원예치료학 박사 최영애씨(57)는 "우리 사회의 희망은 정원을 가꾸는 데서부터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원예치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학교 폭력과 그로 인한 자살을 막을 방도의 하나로 정원 가꾸기를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정원 기반 교육'을 제안한다.

"제대로 식물을 키우려면 최소한 1년이 걸리는데, 먹을거리인 채소부터 아름다운 꽃까지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동안 성공과 좌절을 맛보면서 삶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죠. 더 중요한 효과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 맺기를 익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치료의 하나인 원예치료는 식물 기르기, 정원 가꾸기 등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등 여타 심리치료와 마찬가지로 심리학이 기반이되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것이 원예치료의 특징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세계미래학회의 학회지 는 2005년 12월호에서 10년 후 미래 유망직종으로 원예치료사를 꼽았다. 그만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원예치료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식물을 기르는 긴 과정을 견디지 못하죠. 또 원예치료가 자연과학 분야를 통해 도입되다 보니 사람과의 교감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 양로원이나 학교에서 해온 식물 가꾸기는 원예치료라기보다 단순한 원예 활동에 불과했지요." 그가 2003년부터 원예치료 관련 서적을 꾸준히 출간하고 번역해온 이유다.

반면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원과 인성 교육에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와 실제 사례를 쌓아왔다. 인성 교육의 도구로서 학교 정원 가꾸기를 주목한 것은 18세기 유럽에서부터다. 1879년 출간된 오스트리아 학자 에라스무스 쉬바프의 는 학교 정원 설치법을 강화하는 기반이 됐다. 미국은 20세기 들어 진보적 교육 개혁에 힘입어 학교 정원이 크게 늘었는데, 학교 정원을 가꾸면서 아이들 마음을 순화한 사례가 많이 보고됐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어린이와 자연의 교감, 지속가능한 개발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원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원은 자연의 압축판이자 소우주예요. 삶과 자연을 모두 배울 수 있는 곳이죠. 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정원에 대해 강의할 때 가장 먼저 내준 숙제가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서울의 구치소와 초등학교를 위성사진으로 비교해보라는 것이었어요. 산과 들, 강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병산서원 만대루와 달리 구치소와 초등학교는 휑하니 넓은 운동장밖에 없어요. 삭막하죠."

그는 원예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뭘까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진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해보기 위한 수단이잖아요. 원예도 마찬가지에요. 꿈을 꽃 피울 수 있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원예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정원 가꾸기가 황폐해진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도서관과 정원만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셈"이라는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명언이 그의 모토다.

"도서관만 있으면 반쪽만 가진 거에요. 토양이 좋아야 좋은 과실이 열리듯 사람에게는 교양이란 좋은 토양이 필요한데, 도서관과 정원에서 이를 배울 수 있어요. 사랑, 희망, 기쁨, 행복, 시간의 의미 같은 것들을요. 자살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대책으로 딱딱한 정책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런 토양부터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예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ご?'내적인 동기 관리'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대시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스스로 발현하도록 도와주면 자기 삶에 만족하며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이를 도외시하고 돈이나 명예, 신체적 매력 같은 외적 동기를 좇다 보면 삶이 허황해지죠. 그로 인한 대표적 질병이 우울증이고요. 최근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인 자살도 내적 동기 관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

그는 원예치료를 통한 내적 동기 관리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외적 동기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성매매에 종사하다 그만둔 여성들을 대상으로 6주간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하면서 동기 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지요. 2주면 자라는 빨간무 씨앗을 심게 했어요. 하기 전에 간단하게 인터뷰를 하는데, 대부분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답변이 나왔죠. 그런데 6주 후에는 '나도 씨앗처럼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살아야겠다'고 하더군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는 청소년 문제 해결에도 내적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식물을 보면서 스스로 배우고 깨달아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 살고 싶어해요. 요즘의 아이들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라지 못하게 죽이는 건 부모와 학교죠. 끊임없이 집어넣기만 하니까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견디고,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을 가꾸며 자급자족을 했던 미국 작가 타샤 튜더가 "훌륭하고 가치있는 것은 시간과 공이 들게 마련"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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