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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6조 海戰' 피말린 승부, 흥미진진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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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6조 海戰' 피말린 승부, 흥미진진 내막

입력
2012.01.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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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 21일 영국 런던 현지에서 대우조선해양 남상태(오른쪽)사장과 AP 몰러-머스크사의 아이빈트 콜딩 사장이 1만8,000TEU급 세계 최대 크기의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11년 2월 21일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AP몰러-머스크 그룹과 대우조선해양과의 슈퍼 컨테이너선 30척 수주 계약식이 열렸다. 무려 6조원에 달하는 최대형 프로젝트 계약이었다. 계약서에 직접 사인한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지난 1년여 동안의 우여곡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남 사장은 "머스크사의 대규모 발주 정보를 입수한 뒤 국내외 경쟁사들, 특히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가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해줘 결국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10년 초,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사는 다시 한번 시장을 주도할 야심찬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당시 세계 최대로 꼽히던 1만5,000TEU급(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박스로 나타내는 단위)선을 능가하는 1만8,000TEU급의 초대형 선박 발주계획을 세운 것. 머스크는 이미 운영 중인 1만5,000TEU급 대형 선단을 능가하는 슈퍼 컨테이너 선단을 갖춘다면, 세계 해운 시장을 다시 한번 뒤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시장에서 넘버 원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면 그 순간 운임이 내려가고 경제성 있는 선단을 갖추지 못한 해운사들은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당장 프로젝트 실행에 돌입했다. 자회사 머스크 브로커를 통해 세계 모든 조선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좁혀진 대상 국가가 한국, 일본, 중국이었다. 그때가 2010년 2분기였다.

머스크의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중국이 움직였다. 조선 강국을 기치로 내세운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지원체제를 꾸려 머스크에 구애를 했다. 이들은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선박자금을 대출해 주고, 만약 선주가 원할 경우 달러가 아닌 위안화 기준으로 대출을 실행해 환율변동 위험까지 상쇄시키는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신중했다. 자국인 덴마크에서 조선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리스트에 올렸다. 문제는 미쓰비시중공업은 적극적으로 설계변경 주문을 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을 탐색한 머스크는 2010년 6월 한국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머스크는 우선 선박 금융지원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을 방문했고, 이 소식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5개사에 전해졌다. 그 중에서 빅3업체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당시 빅3업체는 해운업 불황으로 선박 수주에 목이 말라있었던 것.

이들 3사중 삼성이 가장 먼저 나섰다. 대형 컨테이너선 건조에서 쌓아 올린 명성을 배경으로 발 빠른 모습을 보여 현대와 대우를 바짝 긴장시켰다.

대우조선도 즉시 태스크포스를 구성, 대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우조선은 지난 2008년 7월 머스크로부터 7,450TEU급 컨테이너선 16척(2조5,000억원)을 무더기로 수주했던 전례가 있어 머스크와의 신뢰관계가 쌓아 있었다는 것.

2010년 7월 머스크는 선박발주와 관련한 공식 제안서를 3개사 모두에게 발송했다. 내용은 1만8,000TEU건조에 필요한 선박의 필수사양을 발주사와 수주사가 공동 개발하고, 이에 맞춰 가격을 다시 제안하라는 것이었다. 머스크를 이를 통해 우선협상자 2곳을 선정하고, 이후 최종 후보자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대우조선은 곧바로 머스크의 관계자들을 찾았고, 그린십 설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초대형 선박의 연료절감 기술과 액화천연가스(LNG)연료 선박엔진 개발 등이 주 내용이었다. 이에 머스크측은 호감을 갖게 됐고, 대우조선은 7월 말 1만8,000TEU 설계 초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머스크 측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북유럽에서 가장 꼼꼼하고 실리적이라는 '데니시(Denish)'의 결정체로 알려진 머스크 경영진들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았다.

대우조선은 1차 가격입찰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익을 얻기 보다 선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머스크의 요구를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1차 제안 시 추가할인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최저 가격을 제시했다. 일단 이익을 많이 남겨두고 추후 가격을 깎는 방식은 선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게 남상태 사장의 판단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9월, 삼성중공업이 거래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우조선 입장에선 호적수가 사라진 셈.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남아있어 안심을 할 순 없었다.

머스크가 이후 '현대 대 대우'경쟁 분위기를 조성해 가자 대우조선은 맞춤형 기본 설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기존 선박 대비 연간 30%까지 연료효율을 높일 수 있는 독자적인 선형 디자인을 머스크에 제시했다. 대우조선의 이 같은 설계기술은 머스크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머스크는 2010년 10월말 대우와 현대의 마지막 결선에서 대우조선의 손을 들어줬다. 대우조선을 우선협상대상자, 현대중공업을 차순위 협상자로 결정한 것.

권오익 영업설계팀 이사는 "조선업체의 경쟁력은 기본설계에서 나온다"며"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가 대우조선해양의 손을 들어 준 것도 결국 고객 요구에 부응한 '맞춤식' 기본설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최종 계약서 사인까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머스크가 그 해 12월말까지 대우조선의 제안 가격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 대우조선 관계자들은 우선협상자 지위에서 머스크와 협상을 진행했지만 만의 하나 계약이 틀어질 수도 있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다시 해를 넘겨 2011년 1월 마지막 계약 조건 등 세부사항에 합의했고, 한달 뒤인 2월21일에 본계약 체결에 성공, 마침내 환호성을 터트렸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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