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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참교육'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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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참교육' 어디 갔어?

입력
2012.01.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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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디 갔어, 이거 다 어디 갔어?" KBS 개그콘서트의 '위대한 유산' 코너에서 개그맨 황현희가 지난 시절의 놀이나 먹거리를 들어 따지듯 던지는 물음이다. 이 코너가 표적으로 삼은 시청자층과의 세대 차이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는 대신 미루어 짐작하는 쪽이지만, 잊혀져 가는 것들의 기억이 어느 세대에나 소중함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어디 갔어"하고 묻고 보면 오히려 씁쓸할 때가 많다. '왕따'에 시달리던 중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으로 교육현장의 냉담과 무관심이 부각된 것을 계기로 떠올린 '참교육'의 기억이 그렇다.

웃지 못할 '문제교사' 색출 소동

기자 초년병 시절인 1980년대 막바지였다. 지금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이라는 당당한 법적 지위를 갖추었지만, 태동기의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는 비밀결사 비슷했고 각급 학교에서 '색출 운동'이 벌어졌다. 회원들은 스스로를 감추었고, '참교육 운동'조차 공개적으로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그 결과 색출 운동은 당시 교육현장의 일반적 행동양식과 동떨어진 자세를 보인 교사들에 집중됐다.

중학교 교사로서 '참교육 운동'에 동참했던 대학 후배가 전한 얘기는 지독한 역설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려보낸 '참교육 교사' 색출 지침은 세 유형의 교사를 주의관찰을 요하는 대상으로 분류했다. 유난히 수업에 열심인 교사, 학생들이 많이 따르는 교사,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등이었다. 시드니 포이티어의 열연과 룰루의 주제가로 유명했던 이란 영화로, 아니 그에 앞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겪은 선생님들을 통해 뇌리에 간직한 이상적 교사상을 '문제 교사'로 뒤집었으니, 이보다 더한 블랙코미디가 없었다.

산골 초등학교 교장이던 선친께 여쭤 금시초문이란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행정구역이 달랐고, '참교육 운동'이나 색출 운동도 아직 촌구석에는 이르지 못한 때였다. 애초에 밀어내야 할 '거짓 교육'의 자리가 없었던 곳에 '참교육'구호가 먹히기는 어려웠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로 아이들과 가까웠고, 소풍이나 운동회 때 기껏해야 삶은 고구마나 밤, 담배 한 갑을 고맙게 받아 들던 선생님들이었다. 방과 후에도 해가 저물도록 악대부나 산문ㆍ운문반, 합창반, 서예반을 이끌며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애쓰던 그분들의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따스하게 했다.

물론 서울로 전학 온 이후에도 고마운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더러 팍팍한 도회지의 삶을 일깨운 선생님도 겪어야 했다. 일없이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는 데는 열심이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무심하던 선생님, 분풀이하듯 주먹을 휘두르다가도 정작 맞아 싼 놈들은 외면하던 선생님, 아이들 눈에도 뻔한 '변태성'을 가리지 못하던 선생님이 서울에는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런 선생님들의 존재와 그것을 묵인한 학교 분위기가 전교조 태동기의 웃지 못할 '색출 요령'을 낳았던 셈이다.

오래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교사가 수업에 열의가 없고,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촌지만 밝힌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퍼뜨리려는 게 아니다. 언제든 그런 진짜 '문제 교사'는 극히 일부라고 믿는다. 다만 전교조 태동기의 '참교육 운동'이 표방했던 개혁 교사상이 세월과 함께 흐려진 현실이 안타까워 하는 얘기다.

이념이 열의·관심을 앞설 수 없어

물론 당시에도 '참교육'의 내적 지향점은 정권ㆍ체제 비판, 반공ㆍ시장주의 이데올로기 탈피 등을 위한 소위 '의식화 교육'이었고, 교육현장의 실천적 행동변화는 세간의 인식 변화를 겨냥한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회원들이 행동으로 참된 교사상을 부각하려 애쓰던 모습은 값진 기억이다. 교사 권익과 정치노선을 '참교육'보다 앞세운 듯한 전교조의 현재 모습에 비추면 그런 생각이 더하다.

그래서 자꾸 묻게 된다. 참교육 어디 갔어, 다 어디 간 거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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