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이깨나 먹었구나, 실감하는 요즘이다. 피부 탄력 떨어지고 무릎 시린 걸 자주 경험해서만은 아니다. 나날이 뉴스나 신문 지상에서 얼굴 보이고 이름 불리던 사람들, 우리처럼 생겼으나 본디 우리와는 다른 삶의 소유자인 그들 가운데 하나하나가 요 몇 년 사이 차례차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목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음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쳐보는 습관이 있다. 나서부터 죽기까지가 '〜', 이러한 물결무늬로 간략하게 정리되는 바,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는 어떤 비움의 채움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어떤 채움의 허망을 느꼈는데 며칠 전 영결식을 치른 김근태 고문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죄의식 뒤에 오는 분노로 내내 끌탕을 해야 했다. "우리 아버지가 고 김근태 고문이었으면 나 이 나라에 복수했을 거다.
손톱깎이로 살 뜯는 기막힌 통증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했을 거다. 의외로 의외인 곳에서 우리는 또 너무 쉽게 용서한다." 친구들이 투쟁을 외치며 뭔가 불합리한 상황에 맞설 때 지지의 박수 한 번 쳐주지 않았던 내가, 민주주의는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알고 소비하기 바빴던 내가, 아빠 세대의 한 죽음에 이토록 감정적인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만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분명 잘못한 이들이 있는데 왜 사과하지 않을까 진짜 의아해서였다. 우리도 곧 죽을 운명의 사람인 주제에!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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