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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겨울] (5.끝) 봄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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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겨울] (5.끝) 봄은 언제쯤

입력
2012.01.0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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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치나 vs 쪼개지나… 유로존, 한치 앞도 깜깜한 신년운세

붕괴냐, 통합이냐. 유럽연합(EU)이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2009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주변국에서 발발한 재정위기는 주요국으로 급속히 전이돼 ‘더 강한 하나의 유럽’을 향해 달려온 EU의 여정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리스의 국가신용 등급은 채무불이행(디폴트) 직전까지 곤두박질쳤고, 유로존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마저 막대한 빚덩이에 휘청대고 있다.

단일통화의 함정

1999년 EU 12개국이 화폐를 통합해 출범한 유로존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구조였다. 초기에는 역내 자본이동이 활발해지고 교역이 확대되는 등 단일통화의 장점이 부각됐지만 위기가 닥치자 잠재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쟁력이 약한 회원국들은 실질환율이 고평가돼 수출이 악화한 반면 경제 강국들은 더 많은 부를 쌓게 됐다. 이에 대처할 환율과 금리 정책은 단일통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과 정치의 통합 없이 화폐만 합친 바람에 충격에 대비할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EU가 지난달 9일 출범 13년 만에 처음으로 조약을 개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회원국의 재정운용에 대한 EU 집행부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신 재정협약’에 영국을 제외한 26개국이 합의하면서 EU는 통화동맹에서 재정동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나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럽은 정치ㆍ경제를 통합한 유럽합중국으로 최종 진화할지, 아니면 뿔뿔이 흩어져 통합 이전으로 돌아갈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통합이 주는 단물을 나눠 마셨던 유럽이 쓴 물도 나눠 마시려고 할까. BBC 방송은 통합과 붕괴 사이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유럽의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뭉쳐야 산다? 살아야 뭉친다

유럽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미래는 각국의 주권이 침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경제가 완전히 회복하는 ‘기사회생’ 시나리오다. 독일과 프랑스가 간절히 바라는 이 시나리오는 모든 EU 회원국이 3월 확정될 신 재정협약에 합의,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구세주로 나서는 것이다. 유로존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각국 정부와 은행에 돈이 돌고, 그 돈이 다시 시중으로 투입돼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회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신 재정협약의 약발이 먹히지 않을 때다. 이 경우 유럽은 더욱 긴밀한 연합을 도모한다. 정치와 화폐, 재정을 통합하는 ‘유럽합중국’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회원국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권을 포기하고 정치 공동체에 합의, 민주선거를 거쳐 EU 정부를 출범시킨다. EU 정부는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 관계처럼 모든 회원국의 채무를 보증하고 필요한 곳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강력한 중앙기구의 역할을 맡는다. 정치통합에 반대하는 영국 등 일부 국가는 EU에서 탈퇴, 정치적 구속력이 덜한 자유무역협정을 선택한다.

살기 위해 뭉치더라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들이 고강도 긴축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 투자와 소비가 대폭 줄어 심각한 ‘침체’가 찾아오는 경우다. ECB는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지만 얼어붙은 소비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업급여 등 정부 지출은 증가하는데 세수는 줄어 부채는 쌓여 가고 부도와 신용불량자가 속출한다. 결국 정부와 민간 부문 모두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이면서 EU는 빈국 연합으로 전락한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회원국들이 연합 체제에 대한 끈을 놓을 가능성도 크다. 일부 부실국가 때문에 나머지 국가들이 분담해야 하는 고통이 한계치를 벗어날 때 ‘결별’ 시나리오가 성립한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 불량국이 집중된 남유럽과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 재정 건전국이 모인 북유럽 간 갈등이 폭발한다. 남유럽 국가들은 끝없는 긴축 요구에 진저리를 치며 북유럽의 지원이 충분치 않다고 분노한다. 반대로 북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세금을 게으른 남유럽의 뒤치다꺼리에 쓰는 것이 못마땅하다. 결국 살기 위해선 헤어지는 방법 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 각국 정부는 질서있는 해체 수순을 밟는다. 남유럽 통화권과 북유럽 통화권으로 분리될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체제도 붕괴하고 경제도 몰락하는 것이다. 재정동맹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시장에서는 유럽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진다. 투자자들은 유로존 정부와 은행에 투자를 중단, 국고는 바닥나고 은행은 도산한다. 유로화로 대표되던 ‘하나의 유럽’ 꿈은 물거품이 되고 EU는 90년대 초반의 구소련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 전문가와 석학이 보는 2012년 유럽의 미래

전문가들이 보는 2012년 유럽은 암울하다. BBC 방송이 유럽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7명 중 25명이 올해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안에 유로존이 붕괴할 확률이 30~40%에 이른다는 대답이 과반수를 넘었고, 20%는 회원국 구성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올해 경제는 명확하다. 밝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 침체는 계속되고 미국 경제는 잘해야 본전이며 중국과 대부분의 신흥국 경제는 급격히 둔화할 것이다. 유로존의 침체는 불가피하다. 유로존 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나 신용경색, 국가부채, 경쟁력 부족 등으로 심각한 불황이 초래될 것이다. 유로존 내 핵심국과 주변국 간 심각한 무역수지 불균형도 더 커질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통화가치를 조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유로존을 탈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면서 유로존은 부채의 망령에 짓눌려 성장이라는 과제를 놓칠 공산이 크다.”

더글러스 맥윌리엄스,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CEBR) 최고경영자

“유로존이 향후 10년 안에 무너질 확률은 99%다. 올해가 유로존 붕괴의 원년이다. 최소한 하나 이상의 국가가 유로존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스가 탈퇴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이탈리아도 떠날 가능성이 더 높다. 유로존 붕괴 원인은 돈보다는 성장의 부재다. 회원국들의 경제성장 없이는 유로화도, 유로존도 지속되기 힘들다.”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

“유럽 위기가 끝나려면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은행들에 저금리로 무제한 돈을 빌려주고 있다. 대출 만기인 3년 안에 유럽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선다면 이 정책은 성공이다. 그러나 여전히 저성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ECB는 대출해준 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여러 국가가 유로화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유로 국가들이 유로화를 버리고 자국 화폐로 돌아가는 것은 유럽은 물론 전세계 경제에 재앙이다. 이런 결말을 맞게 될 가능성은 3분의 1 정도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이코노미스트

“유로존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는 이미 최우량 국가인 독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위기가 유로존 외 다른 주요 국가들까지 집어삼키는 것이다. 우리는 유로존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로존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져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이어 중국, 인도 등 신흥국까지 전이될 것이다. 유로존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3월 유럽 정상회의 전까지 시장과 다른 국가들에게 확실한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화폐를 통일하는 유로화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유럽 정치계는 돈을 계속 풀기만 하면 경제가 다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파산 상태인 유럽의 국가들이다. 아무리 거대한 구제금융도 그리스를 구할 수는 없다. 독일이 그리스 같은 나라들에 무한정 돈을 빌려주려고 할까. 그렇다면 독일인은 슈퍼 유럽인이 되고 모두가 독일을 사랑하겠지만 그건 미친 짓이다. 그리스가 10년 안에 유로존을 탈퇴할 확률은 최소 80%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심지어 이탈리아도 안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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