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이고 상담시간이고 아이들이 도무지 제 말을 안 들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오죽하면 새해인사 하러 온 20년 전 제자를 붙잡고 '옛날이 좋았다, 선생님 더는 못하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니까요."
서울 구로구의 한 일반계 고교에서 근무 중인 50대 박모 교사는 이런 이유로 최근 명예퇴직 신청서를 내려 했다. 마지막에 퇴직 후의 삶이 불안해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교직에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었다. 2년 새 박 교사 주변에선 "교직에 회의를 느낀다"며 학교를 떠난 동료가 3명이었다.
정년을 다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3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월말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는 공사립 초중고교 전체에서 919명으로 지난해 2월말 신청자 732명보다 187명(25.5%)이 증가했다. 지난해 8월(592명)보다는 327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경기 지역도 올해 2월 명퇴 신청 교사가 총 563명으로 지난해(389명)보다 많았다. 명예퇴직은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 이뤄지며 재직 기간이 20년 이상이고 정년(만 62세)까지 1년 이상 남은 교원이면 신청할 수 있다.
명퇴 신청이 늘어난 원인을 두고 교사들은 달라진 교육환경으로 학생 지도가 어려워지고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점을 꼽았다. 체벌금지 등으로 교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다 보니 나이 든 교사들은 학생지도에서부터 애를 먹는다. 명퇴를 신청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젊은 선생님은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많이 풀어주고 보통 나이 많은 교사들이 악역을 맡다 보니 아이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엄한 생활지도에 반발한 학생, 학부모가 수시로 넣는 민원에 더는 시달리고 싶지 않아 명퇴를 신청했다"며 씁쓸해했다. 서울 해성여고 최석 교사는 "요즘은 수행평가문제에 작은 오류라도 나오면 교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대학교수 의견서까지 첨부해 항의를 하는 학부모가 있을 정도여서 학부모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월 한국교총이 서울ㆍ경기지역 50세 이상 초중고 교원 6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71%가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명퇴를 신청하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말하는 교육환경의 변화란 주로 체벌금지, 학생인권조례 논란으로 인한 교권추락 및 교실환경 변화(61%)를 가리켰다.
하지만 명퇴 신청 교사 증가를 교권 추락과 반드시 연관시킬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 홍은경 장학사는 "근무기간, 잔여월수에 따라 명예퇴직 수당이 달라지다 보니 그 해 책정된 명퇴 예산 등을 따져서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2010년엔 2009년보다 오히려 줄어들어 '명퇴 증가'를 일정한 추세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 남부초등학교 안종복 교장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옛날보다 버거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계형편, 건강 문제, 후배 양성 등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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