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한민국 20대 리포트] (3) 심화하는 20대 내부의 양극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20대 리포트] (3) 심화하는 20대 내부의 양극화

입력
2012.01.03 17:34
0 0

■유학·스펙 쌓기 vs 김밥으로 때우며 알바… 사회 출발선이 다르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20대의 삶에 고스란히 전이되는 양상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애초부터 출발선이 달랐던 이들은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졸업 이후 간극이 더 벌어지는 상황에 처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고민정(가명ㆍ25)씨는 국내 유명대학의 미술대를 다니다 2년 전 미국 뉴욕 한 대학의 패션스쿨에 편입했다. "최신 패션 흐름도 공부하고 문화도 즐기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는 고씨는 부모의 지원으로 연 1,800만원의 학비와 매달 수백만원의 생활비, 집값을 받아 쓴다. 주말이면 친구와 도심 백화점을 찾고 종종 명품 브랜드 매장도 들러 핸드백을 구입한다.

반면 대학생 이은영(가명ㆍ23)씨는 학자금 대출을 포함해 3년 간 총 1,700여만원의 빚을 졌다. 고육지책으로 지난 학기 하숙집에서 나와 학교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밥은 햇반과 김치, 참치로 때우기 일쑤. 그에게 유학은 꿈도 못 꿀 사치다. 이씨는 "어학연수요?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하면 다행이죠. 취직을 해도 학자금 대출 상환부터 하느라 다른 생각할 시간은 없겠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27~29일 설문조사 대행업체 서베이몽키를 통해 전국의 20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7%가 '20대 내에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심화하는 양극화에 커지는 박탈감

최근 몇 년간 등록금 상승률이 물가인상률의 2, 3배에 달하는 학교가 많았다.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휴학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또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 쌓기에도 많은 돈이 들다 보니 20대에게 부모의 경제력은 미래 생활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됐다.

정영식(가명ㆍ26)씨는 최신기기를 좋아해 시가 100만원에 달하는 아이패드2, 아이폰4S 등이 출시되자마자 구입하는 '얼리어답터'다. 중고자동차 매매회사 사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아 평소 어머니의 벤츠 차량을 몰고 다닌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니 차라리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방침 덕분에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다"는 그는 "관심분야인 IT업계 쪽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 20대에게 정씨와 같은 생활과 꿈은 초현실에 가깝다. 대학졸업 후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전석인(29ㆍ가명)씨는 월 50만~60만원에 이르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매일 오전 7시30분 노량진 학원 앞에서 1,000원짜리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무료 특강을 듣는다. 그는 "원래 철학과 대학원에 가고 싶었는데 공무원 준비라는 현실적 선택을 해야 했을 땐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양극화의 심화는 자신의 경제상황은 무시한 채 여유 있는 학생 수준을 따라 하려는 허위의식까지 낳고 있다. 대학생 이유경(25ㆍ가명)씨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겨울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명품 부츠를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좁아지는 계층이동 통로

20대의 팍팍한 삶은 등골탑(등록금 때문에 부모의 등골을 빠지게 하는 대학), 실신세대(대학생 대부분이 졸업 후 신용불량자에 실업자가 된다는 뜻), 알부자족(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을 충당하는 학생)이니 하는 신조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생 이형민(26ㆍ가명)씨는 주중에는 호텔 뷔페, 주말에는 웨딩홀 서빙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월 150만원을 벌어 등록금에 보태고 있다. 그는 "돈 걱정 없이 해외 어학연수나 과외, 심지어 취업대비 수백만원 짜리 양악수술까지 하는 친구를 보면 정말 별세계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수록 악화하는 20대의 현실은 등록금, 취업 교육비가 부족해 이자율이 높은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내미는 대출 통계에 잘 나타나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8월 대부업체 40곳을 전수조사 한 결과, 20대 대학생은 이들 업체로부터 795억원을 빌렸다. 이는 2010년에 비해 40% 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연체율 또한 14.9%로 급증세다.

이처럼 심화하는 양극화만큼이나 빈부 대학생의 현실인식 차이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강남에서 치과병원을 하는 아버지 지원 덕분에 올 2월 졸업 후 미국 경영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김신영(24ㆍ가명)씨. "학부시절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대학생들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다 부모의 경제력에 대학생활과 그 이후에도 양극화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상당수 20대의 열패감은 가히 위험수위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20대는 점차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 분출되면서 동시에 곳곳에서 분노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며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의 높은 투표율이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등의 부담이 결국 다음 세대에 영향을 줘 소위 '인생 역전'의 기회는 줄고 사회연대망은 깨지고 있다"며 "유럽처럼 정부가 교육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청년 실업수당, 고용할당제 등 제도적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김현빈기자

■ 20대 양극화 해결하려면

유ㆍ무형의 고통에 짓눌려 힘겨워하고 있는 20대들. 이들은 20대라도 같은 20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절망한다. 부모의 경제력, 자신의 학력 학벌에 따른 양극화는 20대의 박탈감을 더하는 요소다. 전문가들은 20대 사회적 약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교육 틀 변화, 지원 정책 확대, 사회 인식 개선 등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20대 내부의 빈부 격차를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대 중에서도 경제적 여건이 어려울수록 취업난을 더 심하게 겪고, 취업을 하더라도 쥐꼬리만한 월급이라 결혼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린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가 무이자로 신혼부부에 만기 3~5년짜리 전세자금 1억원 정도를 빌려주고, 아이를 출산하면 상환을 연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결혼과 출산으로 박탈당하는 경제적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류대 위주의 서열화한 대학 현실이 20대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는 "같은 대학 내부에서의 양극화도 있지만 일류대와 비일류대, 서울 지역 대학과 지방대 간 양극화도 존재한다"며 "꼭 일류대에 가지 않아도 취업이나 이후 사회생활에서 차별이 없도록 해야 20대 내부의 양극화도 완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방대를 제도적으로 우대하고, 농어촌 인재 등 지역 균형선발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학생과 부모의 재정 부담이 큰 등록금을 줄이고 7% 수준인 학자금 대출 이자율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경제력이 약할수록 등록금 학원비 등의 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이런 부담이 커지면 제대로 된 교육이 안 돼 취업 기회도 박탈당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취업 출발점부터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게 양극화를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당장의 구체적인 정책보다 20대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청년정책연구원장인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양극화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 채용이 일쑤여서 절망이 더 커지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기성세대가 20대에게 '당신들 미래에 비전이 있다'는 메시지와 대책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