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봉사를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분들이었어요."
새해 첫날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영건(72)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이 진행된 3일 부인의 뒤를 이어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고 떠난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던 유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998년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평생 해군 군무원으로 근무했던 황씨는 85년 어느날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기부는 못하더라도 직접 남을 돕자"는 아내 채모씨의 제안으로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었다.
황씨 내외의 첫 봉사활동 무대는 서울 서초동 판자촌이었다. 여기서 쌀과 연탄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후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인근의 '요셉의원'에서 노숙인들의 목욕과 이발 봉사를 거들었고, 딸들과 함께 한센병 환자를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부부는 황씨가 치매에 걸리기까지 20여 년 간 이웃을 섬기는 삶을 이어갔다.
유족들에 따르면 황씨 부부는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 차가운 바닥 위에서 그냥 잠을 자야 했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부부가 모두 시신기증을 하기로 결정한 건 2002년.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18년째 되던 해다. "인간은 어차피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고, 이후 주저없이 서울 서초동성당에 다니던 지인들과 함께 시신기증 서류에 서명했다.
지난해 5월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아내의 시신이 먼저 병원에 기증됐다. 유족들은 "그때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르자니 너무 섭섭해서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시신 기증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시니 아버지 뜻을 따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동의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지대로 황씨의 시신은 가톨릭대 의대에 기증돼 학생들의 교육용 실습에 사용될 예정이다.
가톨릭대 의대 관계자는 "부부가 모두 시신을 기증한 사례는 굉장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연을 접한 의대생들이 기증자와 유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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