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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형 버핏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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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형 버핏세'

입력
2012.01.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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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한국식' 따위의 수식어가 붙어서 좋을 게 드물다. 유신 시절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좋은 예다. 이른바 '주권의 수임기관'이라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이 그 의장이 되고, 다시 입법부의 3분의 1을 추천해 형식적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절차를 거치는 '순환_일체형 권력 구조'가 두드러졌다. 민주정치의 기본 요건인 3권 분립을 무너뜨린 비민주성을 호도하기 위한 수식어가 바로 '한국적'이었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허물고, '미국식 민주주의'와 같은 특수성을 부각하려는 '언어 공작'의 결과였다.

■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소득세법의 핵심 조항인 '과세표준 3억원 이상 구간 신설 및 38% 세율 적용'을 '한국형 버핏세'라고 부를 때의 느낌도 비슷하다. '버핏세'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진짜 '버핏세'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말 듯한 어감이다. 지난해 워런 버핏이 주장해 세계적 화제가 된 버핏세는 두루뭉실하게는 '부자 증세'로 이해됐지만 엄밀하게는 소득세에 비해 세율이 낮은 배당소득을 비롯한 자본이득세를 적어도 소득세 수준으로 올리자는 주장이었다. 부자일수록 자본이득이 커서 결과적으로 부자 증세로 이어질 뿐이었다.

■ 개정 소득세법이 흩뜨린 것은 이런 원칙만이 아니다. 과표 구간과 세율이 계단 오르듯 하더니 갑자기 과표 구간만 껑충 뛰고 세율은 잔걸음을 한 모양새가 영 형편없다. 현행 소득세율은 연 1,200만원 이하 0%, 1,200만~4,600만원 15%, 4,600만~8,800만원 24%, 8,800만원 이상 35%다. 구간 차이가 3,400만원, 4,200만원에서 갑자기 2억원 이상으로 커진 반면, 세율 차이는 9~15% 포인트에서 거꾸로 3% 포인트로 줄었다. 최고세율 적용대상자 숫자 논란까지 더하면 아무리 급해도 너무 무성의했다.

■ 그러나 각도를 틀어서 보면 개정 소득세법의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다. 우선 말만 시끄러웠던 '부자 증세'의 제도적 물꼬를 텄다. 앞으로 과표 구간과 적용 세율의 조정으로 비틀어진 모양을 바로잡고, 자본이득세를 포함한 조세체계의 일대 개편 등의 과제를 정치권과 정부에 던졌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최고 세율 35%의 벽을 뚫어, 공급 측면에 치중한 '감세 정책'의 종언을 공식화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감세의 투자증대 및 고용ㆍ소득 증대 효과를 둘러싼 오랜 논쟁을, 작지만 한 걸음의 실행으로 가볍게 밀쳐낸 게 반갑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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