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논란 끝에 대통령령으로 확정된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 처음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경찰청이 대구 수성경찰서에 대해 대구지검의 진정사건 내사지휘를 거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지난 연말 전국 일선경찰에 내려 보낸 17개 항목의 '수사실무지침'을 통해 검찰의 내사지휘를 일절 거부하도록 한 사실도 확인됐다. 수성경찰서의 경우는 이 지침을 적용한 첫 사례인 셈이다. 경찰 수사실무지침은 나아가 검찰의 수사 중단ㆍ송치 지휘도 거부하도록 돼 있다.
우리는 지난 연말 검ㆍ경 수사권 정부조정안이 부분적으로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에 역행한 퇴행이라며 경찰의 수사입지를 좀 더 넓혀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검찰의 내사지휘, 수사 중단명령 같은 대목들을 지적했다. 경찰의 태도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든 법령으로 확립된 사안에 대한 시행기관의 거부는 국가 운영체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대한 잘못이다. 더욱이 이번에 문제 삼은 검찰 사건 내사지휘는 처음부터 다툼의 여지가 있던 사안도 아니다. 권한 다툼은 경찰의 독자적 내사에 국한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수사인력이 제한적인 검찰이 경찰력의 조력 없이 방대한 수사를 제대로 수행해나가기는 어렵다. 이 경우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경찰의 행태가 더 볼썽사납게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가 경찰의 수사입지를 넓혀줄 필요가 있다고 편을 들었던 것은 어느 정도 경찰의 능력과 책임감에 대해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디도스 사건 등의 수사는 이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경찰 역시 국민이 믿고 지지해야 할 어떤 이유도 보여주지 못했다.
누누이 지적한 대로 경찰권한의 확대는 국민적 신뢰 없이 집단이 막무가내로 요구한다고 해서 이뤄질 일이 아니며, 내부에서 몇몇이 청장 물러나라고 압박해서 될 일도 아니다. 경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몽니가 아니라 부끄러운 자기 역량에 대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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