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3일 '물가관리 책임실명제' 도입을 지시했다. 주요 생필품마다 담당 공무원을 정해 "목표한 가격을 반드시 지켜내라"는 엄명이다. 올해 국정목표인 '물가안정'을 반드시 이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만, 시장원리를 무시한 '때려잡기' 식 물가대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생필품 물가가 올라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을 못 봤는데 서민에게 가장 중요한 물가 문제는 공직을 걸고 챙겨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가령 배추는 농림수산식품부 A국장, 샴푸는 지식경제부 B과장 식으로 담당자를 정해 처음부터 수급을 책임지고 물가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배추 값이 1만5,000~2만원이면 달러로는 약 20달러인데,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며 "열린 사회인 만큼 수급 예측을 잘하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으니 올 한해는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당장 관가에서조차 "현실을 모르는 주문"이라는 푸념이 나온다. 물가 부처의 과장급 간부는 "실명제라고 특별한 수단이 생기겠느냐"고 난감해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는 "농산물은 워낙 날씨 영향이 커 잡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정부의 물가 압박으로 가격 인상을 미뤄왔던 민간 업계는 폭발 직전이다. 생활용품업체 A사 관계자는 "샴푸, 세제 등의 핵심 원료(계면활성제)는 전량 수입하는데 가격이 날로 뛰어 마진이 계속 줄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식품업체 B사 관계자는 "작년부터 '추석 때까지만', '연말까지만' 인상을 참아달라던 정부가 올해는 '설이 지날 때까지', '총선까지'를 압박할 모양"이라며 "이러다간 업계에서 '민란'이 날 수도 있다"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싸늘하다.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수요ㆍ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물가를 책임지라는 건 모든 유통시스템에 간섭하겠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일정 가격을 넘는 만큼 보조금을 주지 않는 이상 가격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실제 효과는 없이 시장만 왜곡시킬 수 있다"며 "80년대식 가격통제 접근보다는 담합이나 하도급 불공정 관행 등 구조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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