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펙·불안·개인주의… 기성세대의 단편적 시선이 달갑잖아"
블로그진 '월간잉여' 편집장인 최모(26)씨는 20대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관심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는 "언론과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20대를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기성세대는 20대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승현(41)씨는 "20대와 기성세대 간 불신이 뿌리 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입장에서 보면 반공 교육을 받고 권위주의적 환경에서 자란 50~60대와 자유발랄하고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20대는 너무 다르다. 이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2012년 한국의 20대는 기성세대의 오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세대별로 경험 가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항변이다. 20대를 보는 20대 스스로의 생각과 기성세대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기성세대가 말하는 20대
"20대 하면 '대학생, 알바, 청춘'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20대 때보다 지금 20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 노력하면 삶이 나아질 수 있는 것 아니냐."(이재우ㆍ57ㆍ자영업자)
은행원 최모(60)씨의 평가는 조금 더 보수적이다. "지금 20대가 안정을 쫓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다. 예전처럼 민주주의가 필요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나."
물론 "20대 하면 '불확실성, 불안'이 떠오르고 지금 20대들의 삶이 우리 때보다 더 팍팍해진 것 같다"(김경숙ㆍ57ㆍ주부)며 요즘 20대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청년 실업자 100만 명 시대, <아프니까 청춘이다> 와'나는 꼼수다'열풍,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판도를 바꿔 놓은 청년층 유권자의 높은 선거참여 등 2011년 여러 사회 현상을 통해 20대의 삶과 생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아프니까>
언론과 정치권은 앞다퉈 '경쟁에서 비롯한 불안과 분노', '보수도 진보도 아닌 합리성' 등의 키워드로 20대를 정의하기에 바쁘지만 20대들은 그렇게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20대가 보는 20대와 기성세대
대학을 자퇴하고 2010년부터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수(21)씨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경제적 안정만 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20대만의 특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20대의 특징이 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06학번 지재욱(26)씨는 "20대 대학생들의 '가족의존적 개인주의' 경향은 한국의 가족주의, 20대의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경제 구조가 중첩된 현상이지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20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인식은 조금 더 적나라하고 직설적이다. 김민수 팀장은 "기성세대의 20대에 대한 태도는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40대는 민주화, 50대 이상은 6.25 전쟁과 산업화 등 자신들의 경험에 맞춰 단편적으로 20대를 이해하려 하지 20대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가 기성세대를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일보의 전국 20대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성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권위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꼽은 20대가 31.1%나 됐다. '안철수 열풍' 역시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과 수평적 소통을 지향하는 경향으로 20대들은 해석한다.
세대 간 인식 차이를 넘어
20대와 기성세대 간 불통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대와의 소통 내용을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등의 책으로 펴낸 엄기호(42) 연세대 강사는 "기성세대는 자신들과 다른 사회적 경험에서 나온 20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로 들면 기성세대에 정치는 곧 국회를 의미하지만 20대에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뜻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20대의 투표율만 보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기성세대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취지다. 이런 맥락에서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성세대 중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486세대가 20대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우리가>
"20대가 아프니 위로해야 한다"는 진단을 이끌어낸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처방을 넘어 20대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영업자 이종숙(41ㆍ여)씨는 "청춘이 행복해야 사회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 아닌가. 무조건 견디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학비 감면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프니까>
20대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52%는 '미래에 대한 불안', 19.3%는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그러나 김민수 팀장은 "과거 20대의 공통 정서가 '불안'이었다면 지금은 '쫄지마'로 바뀌었다"고 했다. 기성세대가 20대의 특징을 단편적으로 규정하지 말라는 20대들의 항변으로 읽힌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 "30대가 되면 행복해질 것" 36% 불과
30대가 되면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한국일보가 지난해 12월 27~29일 전국 20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대가 되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답한 이는 35.9%에 불과했다. 30대에 모든 방황을 끝내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리라 기대하는 건 이젠 머나먼 꿈이다. 비정규직 알바 인생, 취업했다 해도 직장인 월급으론 감당하기 힘든 집값, 비싼 결혼 육아 비용 등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모 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김한수(29ㆍ가명)씨는 "서른이 반갑지 않다"고 털어놨다. 3년 차 직장인인 그의 생활은 여전히 안정적인 것과 거리가 먼 탓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대학을 다녔고 재작년 여름 졸업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어렵게 얻은 일자리는 비정규직.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에 불안정한 고용상태이다 보니 여자친구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그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전세 얻기도 힘든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자가 있겠느냐"며 "30대가 돼도 지금과 같은 불안한 생활의 연장일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시중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은정(28ㆍ가명)씨는 3년 동안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이씨는 "연이은 낙방 이후 불안해서 금융권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지원할 수 있는 건 창구직원밖에 없었다"며 "계약직이라도 경쟁이 치열해서 여러 군데 떨어지고 겨우 붙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2년이 지나면 또 다시 재계약을 걱정해야 한다. 그는 "고용상태가 불안정하다 보니 내 직장, 내 직업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예전엔 30대라고 하면 안정되고 멋진 삶을 꿈 꿨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30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다"고 한탄했다.
대학에 머물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전공인 디자인 분야를 폭넓게 익히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최지영(27ㆍ가명)씨는 "교수 잔심부름에 청소까지 잡다한 일로 하루를 보내니 나이만 먹고 꿈을 잃어가는 느낌"이라며 "취업 문도 넓지 않은데 공부만 하고 있으니 결혼이나 출산은 사치 같다"고 자조했다. 그는 또 "서른 살이 돼도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더 많은 책임감이 부여되는 나이다 보니 오히려 더 불안한 30대를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취업난과 생활고를 비관한 20대들의 잇따른 자살은 이런 불안감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다. 한달 전 서울 정릉동에서는 승무원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던 지모(27)씨가, 그 하루 뒤엔 서울 서초동에서 공무원 시험에 수 차례 낙방한 황모(29)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대의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취업이다. 결혼 출산을 꺼리는 이유도 결국 벌이가 시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고용대책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정책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그나마 20대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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