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 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지관 스님이 지난해 9월 입원하기 직전 친필로 남긴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임종게(臨終偈))
2일 세수 80세로 입적한 지관(智冠) 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이 시대 최고의 '학승(學僧)'이자 '율사(律師)'로 평가를 받고 있다.
스님의 학승으로서의 면모는 2009년 10월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에서 퇴임한 후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세계 최대 불교대백과사전인 편찬에 매달린 데서 잘 알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지관 스님은 1,700년 전통의 한국 불교가 독자적인 불교 사전조차 하나 없음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겨 19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 사재를 털어 가산(伽山)불교문화연구원을 만들어 사전 편찬에 힘을 쏟았다"고 회고했다. 현재 13권까지 나온 이 책의 편찬 작업은 기초자료 조사에만 10년이 걸렸을 정도로 방대하다.
스님은 불교계에서는 전인미답이라 할 수 있는 금석문(金石文) 분야에도 열정을 쏟아 (전7권)을 펴냈고, 한국불교학 연구자 100인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도 발간했다. 그가 74년에 펴낸 는 한국불교학 자료의 서지적 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다. 이런 공로로 문화관광부 은관문화훈장(2001년)과 조계종 포교대상(2001년), 만해대상 학술부문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한국 근대 율맥(律脈)의 중흥조인 자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관 스님은 율사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와 동국대 총장,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많은 학인을 길러냈다. 해인사 강원 강주(講主)와 동국대 교수로 지낼 때 그에게 배운 학생이 수천 명이다. 지관 스님은 , , 등 율학 관련 교재를 편찬해 율풍 진작에도 힘썼다.
지관 스님은 32대 조계종 총무원장(2005~2009년)으로 재직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연륜으로 종단을 매끄럽게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 초기 1998년 멸빈자 등 징계자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해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져온 조계종의 분열을 마감하고 화합의 기틀을 다졌다.
최근 활성화된 불교계 최초의 공익기부재단인 '아름다운 동행'도 그 때 출범했다. 조계사 성역화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국제선센터 등을 건립해 한국불교와 간화선(看話禪)의 대중화를 위한 기반도 구축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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