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가슴 속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전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한 말이다. 고인이 세상을 뜬 지 나흘째인 2일 오후7시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선 일반 시민과 정치인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 마지막 순서로 고인의 생전 영상이 음성과 함께 나오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무대 뒤편엔 민주화청년운동연합(민청련)의 상징인 두꺼비 옆에서 부인 인재근 여사와 어깨동무를 한 채 왼쪽 손을 높이 치켜든 김 고문이 그려진 현수막이 내걸렸다. 장소가 비좁아 미처 들어가지 못한 500여명은 스크린이 설치된 야외에서 촛불을 들었다.
경기 수원에서 온 오모(43)씨는 "1980년대 거리에서 저는 시위생, 고인은 연사로 집회에 참석했다"며 "고인은 우리 세대에게 언제나 큰 형님이고 가장이었다"고 말했다.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에선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임수경씨가 추모시를 낭송하고,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이계안 전 의원 등이 추모사를 했다. 꽃다지, 장사익, 권진원, 김원중, 노래를 찾는 사람들, 우리나라, 안치환 등의 추모 공연도 이어졌다.
유가족 대표로 참석한 인재근씨는 "(남편은)하늘나라로 가면서 다행히 비밀병기인 나를 남겨두고 갔다. 그가 하늘나라에서 '인재근을 남겨놓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가 남긴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는 그 뜻을 이어받아 앞장 서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했다.
앞서 오후 5시 명동성당 본당에선 추모 미사가 열렸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집전으로 열린 미사엔 유가족 신도 일반시민 정치인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미사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83년 민청련 결성은 목숨을 건 결단이었고, 그 때문에 김근태 형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서운 전기고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평화 정의 지혜인데, 평화를 정의 앞에 놓은 것에 고인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행동 지향과 목적이 바로 평화였던 것"이라고 했다.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도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조문객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병연(47)씨는 초등학생인 아들 윤서(10)군과 함께 빈소를 찾아 "민주화 투쟁을 하던 80년대보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 삶이 더 기억에 남는 분이었다"며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사셨던 김 고문처럼 아들에게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빈소엔 임채정 전 국회의장, 손숙 전 환경부 장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 안상수 진영 한나라당 의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등이 찾았다. 장례위원회 측은 오후 7시 현재 누적 조문객이 3만7,0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한편 장례위 관계자는 "오후 2시 15분쯤 북측이 민족화해협의회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을 통해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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