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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파사현정의 본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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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파사현정의 본래 뜻

입력
2012.01.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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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에서 석가모니 다음 자리에 놓이는 분이 용수보살(본명 나가르주나)이다. 공(空)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대승불교의 기초를 닦은 그는 석가모니 열반 6~7세기 뒤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뛰어난 재능을 방탕한 놀이에 탕진하던 그는 왕궁에 잠입, 궁녀들을 범했다가 군사들의 추격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비로소 욕망과 쾌락이 괴로움의 근본임을 깨닫고 출가, 오랜 공부 끝에 깨우침을 얻고는 죽을 때까지 부처의 참뜻을 가르쳤다. 관세음보살 등 관념적 대상이 아닌 실재인물로선 드물게 보살로 추앙됐다.

■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이 단어를 추천한 김교빈 호서대 교수는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라며 "특히 총선이 든 올해 사악한 무리들을 몰아내고 옳고 바른 것을 세우고자 하는 희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릇됨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한자어의 뜻 그대로다. 이 신문의 2011 신년 사자성어'민귀군경(民貴君輕)'이 백성의 존귀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제언 수준이었으되, 올해의 용어에선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강한 행동의 의지가 느껴진다.

■ 이 '파사현정'이 바로 용수보살의 중관(中觀)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관은 말 그대로 바르게, 아무런 걸림 없이 공정하게 본다는 뜻이다. 물론 불교사상이란 워낙 어렵고 오묘해서 함부로 논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수의 시대가 부처 열반 이후 수백 년 동안 온갖 분파의 이설(異說)들이 난립하던 때임을 고려한다면 대강의 배경적 의미는 미루어 짐작된다. 저마다 주장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틀렸다는 것이 바로 중관사상의 출발점이다. 파사의 깨부숴야 할 사(邪)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 저만 옳고 저만 잘났다는 극단의 생각이나 태도다.

■ 그러므로 용수의 중관사상은 정확하게 중도(中道)의 사상이며, 파사현정은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드러내야 할 어떤 바른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극단이란 잘못을 깨는 것, 그 자체가 정(正)을 드러내는 것이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양 극단에 치우침이 없는 포용을 실현하는 것이 '파사현정'이다. 국내외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돌입한 지금 강퍅한 대립과 대결, 증오와 배제로는 어떤 긍정적 변화도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는 의미심장하고 시의적절하다. 글쎄, 이런 뜻까지 숙고해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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