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 내려가고… 돈 줄 막히고… 대형은행 생존도 '살얼음판'
#프랑스와 벨기에의 합작은행인 덱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은행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단기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곧바로 파산설에 휩싸였다. 프랑스, 벨기에 양국 정부는 결국 덱시아의 부실자산을 떼어내 정부가 보증하는 배드뱅크를 만들고, 건전한 사업부문은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말에는 덱시아의 룩셈부르크 자회사를 오일 강국 카타르에 넘겼다. 덱시아 사태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연합(EU)에서 안정적인 은행으로 꼽힌데다 자본도 많았기 때문이다. 덱시아가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48억유로어치의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것이다. 그리스발 재정위기를 계기로 금융기관끼리의 대출이 감소하고 덱시아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단기 유동성이 동 난 것이다.
미국 2위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유럽 발 재정위기로 돈 되는 것은 다 내다 파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금 압박이 심해지면서 인도의 업무지원 운용본부와 자회사, 일부 부동산을 매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제는 인수한 메릴린치까지 내다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직원도 줄이기로 했다. 연간 50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3만명을 앞으로 수년 동안 감원키로 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을 때 자본구조가 취약한 은행으로 분류됐던 BoA는 지난 2년간 구조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재정위기와 경기둔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산 매각과 직원 감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PIIGS 국채 보유가 원인
2008년 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파산하자 미국 정부는 전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며 대형 금융회사들을 살렸다. 덩치가 너무 커서 방치할 수 없다는 대마불사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 전에 대형 은행들이 다시 위기를 맞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로 인해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자금줄이 막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피그스(PIIGSㆍ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재정위기가 국채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들 국가의 국채를 다량 보유한 금융기관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한 유럽 은행들의 의존도 역시 더욱 심화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은행들
유럽 은행들은 올해 7,000억유로에 달하는 대출금을 차환해야 한다. 그런데도 은행의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2013년 가동되는 국제협약 바젤3를 앞두고 올해 6월까지 기본자기자본비율을 9%로 높여야 한다. 자본 확충의 필요성이 매우 절실한 상태다. 자기자본을 적립하도록 하는 것은 대형 은행들이 정부만 믿고 지나치게 수익만 추구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유럽 은행들은 바젤3를 충족하기 위해 2,210억유로(약 333조8,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미국 금융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바젤3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유럽 국채에 대한 위험 노출 우려가 커졌고 실제 신용등급도 줄줄이 하락하면서 유럽발 악재를 마냥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다팔고 대출 줄이고
돈이 필요한데도 자금줄이 막힌 대형 은행들은 자산을 매각하거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을 줄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형은행 두 곳이 유로화 도입 이전의 화폐로 거래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등 일부 금융회사들은 유로존 붕괴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 은행이 자금 조달 창구를 다변화하기 위해 카타르 등 중동과 아시아 지역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 덱시아가 카타르에 자회사를 매각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대형 은행들도 아시아, 중동 지역 부호와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 신용평가사들 '칼춤' 경기회복 노력에 찬물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 하루가 멀다 하고 유로존 국가와 금융회사들의 신용등급을 내리거나 강등 가능성을 비쳤다. 2008년 부실 주택담보대출에 최고등급을 부여,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려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했다.
각국 정부가 재정긴축안과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아도 신용평가사들이 혹평을 쏟아내면 세계 금융시장은 출렁거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난해 이들 신용평가사의 평가를 두고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신용평가사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들의 판단이 전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신용평가의 85%가 무디스, S&P, 피치 등 3개 기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 기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980년대 이후 국가간 자본과 신용 거래가 활발해지고 신용평가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존이 커지면서 이들 3대 신용평가사는 더욱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그러나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천문학적 국가 부채에 허덕이는 미국보다 유럽 국가들을 더 낮게 평가하거나 지나치게 서구 선진국 위주로 평가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는 신용평가사의 수익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다. 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기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수익구조 때문에 위험도를 냉정하게 평가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에는 신용평가사 제재 움직임 또한 활발했다. 유럽의 금융시장 감독기구인 유럽증권시장청(ESMA)은 신용평가사 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벌금 부과, 영업 정지 등 제재를 취하기로 했다. 유럽 수뇌부들이 유럽을 다루는 별도의 신용평가사 설립을 원하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미국의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신용평가사의 평가를 받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채 평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위험자산 분류기준을 따르고 회사채 평가는 기업의 재무제표와 증시의 불안정성을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이들 기준을 따르면 투자자들은 신용평가사의 발언에 덜 주목해도 되며 그 경우 신용평가사가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력도 감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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